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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Jul 22. 2022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김영옥 /교양인

  -외로울 땐 독서



흰머리 휘날리는 예순을 넘은 나이어서,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꽂혔다.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화두 아닌 화두가 되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늙음은 언젠가부터 먼저 달려가 내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몸의 여러 곳이 탈이 났는데, 그 이유가 대부분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어떤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어서 암담해질 때가 많았다. 신체적인 변화인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늘 한 박자 타이밍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늙어보는 게 처음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삶은 이전 세대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초 장수 시대의 도래로 나이 드신 부모님의 봉양의 의무를 아직도 지고 있다. 그리고 만혼이 되었는데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식들도 있다. 위로 아래로, 양쪽의 부담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앞길도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정말 문제가 많은 세대들이다. 나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최근에 자식들이 독립해서 나가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자식들이 독립해서 나가고, 이제 그토록 그리던 나만의 시간을 예전보다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막상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되니 자유로움이 아니라 갑자기 허전함을 느끼며 홀로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떠난 후, 갑자기 집이 휑하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도 시들해졌다. 코로나가 오래 지속되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예전만큼 없는 것도 현실이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 속에서 자유로움이 아니라 외로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가족으로부터의 독립과 나만의 시간을 갈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다행히도 내게 꼭 필요했던 충고를 바로 이 책에서 발견했다.

이 지긋지긋한 삼복더위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글이었다.



 삶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는 현실을 똑바로 직면할 용기와 현실 너머를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용기와 상상력이 가장 필요한 때는 아마도 노년일 것이다. 이 시기야말로 스스로 용기 있게 선택한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낼 것인지, 아니면 원치 않는 홀로 됨에 슬퍼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인지가 결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전면적으로 만나는 삶이고, 후자는 외로움 속에서 자기와 소원해지는 삶이다. 외로움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멀어짐은 순환 관계에 있다. 외로움은 희로애락을 나눌 타자의 물리적 부재, 관계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결핍된 감정이다. 그러나 ‘외톨이’라는 불안하고 고통스런 고립의 감정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의미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의 부재와 관련된다. 타자와 의미 있는 소통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려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개체로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타자가 물리적으로 부재해도 언어와 상상력을 통해 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다. 전면적으로 만나는 자기 안에서 타자에 대한 앎 역시 확장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연결되어 있음’이 반드시 물리적인 ‘함께’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니 더 잘 연결되기 위해서라도 홀로 있음의 시간은 필요하다. 이 시간은 더는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시간이다. 소란스러운 외부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나 자기 자신과 전면적으로 만나는 고독의 시간은 공허나 고립, 불안을 동반하지 않는다. 고요한 이 ‘홀로’의 상태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삶의 의미, 삶의 목적이다.(192~193쪽)



 그랬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고독해야 했다. 고독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알아야 할 핵심이었다.

 혼자 있어야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만날 수 있을 때에 타자와 더 잘 연결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독서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책은 그럭저럭 읽어 왔지만 더 적극적으로 독서를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야겠다.

 외롭지 말고 스스로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말인 것 같다. 동의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둘을 철저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이 타자 의존적인 것인 반면에, 고독은 독립적인 자유의 상태인 것이다.


나는 흰머리 휘날리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문득 생각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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