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오리 Jul 17. 2022

종이 위의 산책자/양철주/구름의 시간

 -외로울 땐 독서



 -필사, 아름다운 오마주



 평소에 산문집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가끔 인연 따라 만나는 책을 읽는 편이다. 『종이 위의 산책자』도 아주 우연히 내게로 온 책이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이 필연을 가장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삶은 사실 필연적인 우연의 연속이지 않나.


 보통 산문집은 한 번에 쭉 읽어버리고 덮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읽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야금야금 꺼내어서 조금씩 맛보고 싶었다. 맛있는 것을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맛있는 것은 좀 아끼며 먹으려고 한다.

 이 책의 맛이 어떠한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단정한 책 표지에서의 인상으로 딱 그럴 것이라고, 속단 아닌 속단을 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먼저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부터 서둘러 말하자면, 마치 슈만/리스트의 , <헌정>을 들은 기분이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감미로운 피아노의 멜로디가 계속 뇌리에 울려 퍼지고 있는 듯했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왜 특정 음악으로 발현되는지는 나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필사’에 대한 작가의 마음 풍경이 그러할 거라고 상상해서일까. 내게는 이 책이 ‘문학에 대한 아름다운 오마주’로 읽혔다.


 각설하고, 책에는 고요하지만 뭉클한 마음 풍경들이 구름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름은 저 멀리 높은 곳에 떠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기쁨과 슬픔을 허용하는 신비로운 것이다.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해는 더 기울지 않고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람은 지금 이 상태로 유지되기를 나는 바랐다. 햇빛과 바람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오후의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원했다. 더 욕심낼 것이 없었다. 그런 기분이었다.(145쪽)



 책을 읽는 순간의 기분을, 나는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미리 이런 말을 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이야말로, 작가와 독자의 아름다운 만남이 아닐까.

 작가는 독자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던 것, 아니,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망각의 언어를 살그머니 꺼내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독자들의 ‘마음의 매개자’라고 부르고 싶다.


 시처럼, 때로는 음악처럼 울림 있는 많은 글들이, 내게도 필사를 간곡하게 권하는 것 같았다.

 작가는 ‘필사의 미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칡뿌리를 씹는 것은 그 즙으로 인해 배부르고자 함이 아니라 즙을 음미하고, 씹는 행위를 즐기는 것이다.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필사를 계속할 수 없다. 필사는 무엇을 창조하려 함이 아닌 작품의 곱씹음 혹은 작가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34쪽)


내가 필사하는 한 편의 시는 단순히 오래되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 가시밭길보다 거칠고 남극점보다 더 차갑게 냉혹한 시간을 헤치고 별빛처럼 내게 온 것이다. 필사하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한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골방에서 시작되고 끝날 뿐인 것 같지만, 더 큰 맥락에서는 한 작품의 불멸에 간여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112쪽)


필사가 즐거운 이유는 아름답고 힘이 되는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만족감을 자주 느낄 수 있다면 축복이다. 이 정신적인 즐거움과 견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책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니고, 문장이 나만을 위해 쓰인 것 아니고, 책이 한 권뿐인 것도 아니지만 그 문장이 내게 기쁨을 주는 순간 문장을 발견한 사람도 나 하나, 읽은 사람도 나 하나,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나 하나인 듯 행복감에 젖는다. 이 책은 오롯이 내 것이다. 나만을 위한 침묵, 나만을 위한 세계다.(146~147쪽)


 필사하는 글에는 내 등을 쓸어 주는 따스한 손, 나를 응원해 주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한 응원에 힘을 얻으며 스스로 어려움에 맞설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텍스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이러면서 문제를 분명히 바라보고 맞서는 힘이 조금씩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190~191쪽)



 작가는 가슴속에 오래된 그리움을 겹겹이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필사를 통해 그 그리움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필사’에 대한 빛나는 문장들은 곳곳에 차고 넘치지만, 그 많은 문장을 다 옮길 수는 없어서 이 정도만 언급하기로 한다.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냄새에 관한 작가의 예민한 감각이었다. 후각의 기억은 길고 강력한 것 같다. 작가의 글에서 많은 냄새와 향기 이야기가 나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부치미를 부치셨다. 배를 채운 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억 속에서 비는 기름 냄새와 연결되고 부치미의 맛과 고리로 얽힌다. 내가 회상하는 유년의 기억, 기름 냄새 떠도는 기억, 이것은 내게 홍차에 적신 마들렌과 동급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기억이 없었다면 나는 돌아갈 곳 없는 떠돌이라는 생각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125쪽)


 녹차의 냄새는 매끄덩하다. 그 냄새는 약간 무겁고, 고여 있는 듯하지만 바닥에 깔릴 정도는 아니다. 약간 그늘진 침묵의 맛, 이것이 좋은 녹차의 향을 음미할 때 느끼는 것들이다.(126쪽)


 햇볕에 잘 마른 빨래 냄새를 사랑한다. 시골의 겨울 아침 냄새, 겨울이 끝나 갈 무렵 마지막 남은 눈이 녹을 때의 서늘하고 촉촉한 바람 냄새를 사랑한다. 지금이 그때! 바람이 불어온다. 냄새는, 향기는 위로다. 나를 감싼다. 삶을 안아준다. 그것은 삶의 냄새. 나는 그들이 있는 내 삶을 껴안는다.(128쪽)





 나도 어릴 적에는 ‘개 코’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후각이 예민한 편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다른 감각도 그렇겠지만 후각이 많이 무디어졌다. 냄새에 대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옛 향기와 냄새가 내게도 물씬 풍겨왔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코티 분 향내, 한여름의 옥수수 찌는 냄새, 겨울 연탄불 위 석쇠로 굽던 꽁치 냄새, 그리고 많은 종류의 냄새들... 그것들은 성냥개비를 그었을 때 확 일어나는 불꽃처럼 선연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 그 시간이 몹시 그립다.

추억은 미화되어서 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추억의 힘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산문집은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때때로 많은 사람들 공동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작가와 독자는 만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책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헌정 https://youtu.be/Cd2obo8hqRw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가토 도시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