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오리 Aug 03. 2022

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오민석 에세이/뒤란

  -외로울 땐 독서



       -먹실 골 일기


오민석 작가의 산문집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번 책에서는 먹실 골에서 머물며 보고 체험했던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먹실 골 판 ‘전원일기’ 같다. 책에 나오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새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자연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내가 몰랐던 꽃, 나무, 새들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먹실 골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치 먹실 골을 직접 다녀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만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작가는 최근에 아내를 잃었다고 했다. 아내는 그의 첫사랑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런 그를 치유해준 것은 먹실 골의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환대’였다. 자연과 사람들이 그를 위로해주고 사랑으로 품어주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과 달리, 그곳은 아주 다른 세상 같았다.

먹실 골 ‘환대’ 학교의 교장선생님인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K’씨는 작가에게 ‘환대’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진심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봐도 감동적이었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숲 속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환대의 위대함을 배웠고, 겸손의 막강한 힘을 알게 되었으며, 넘치는 생명성의 찬란함을 신뢰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그 모든 ‘아등바등’에서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었다. 자연과 운명 앞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철저한 수동성’이었다. 내가 나를 비울 때, 비로소 무변광대한 신성神性이 나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내가 ‘철저한 수동성’의 자세를 가질 때, 가장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아무 대가나 인정이나 성취가 없는 사막에서도 글쓰기가 지속될 수 있다. 나는 쓰고, 또 쓰고, 또 쓸 것이다.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무렵, 내게 사랑이 왔다. 살아야겠다.(7~8쪽)


 그는 먹실 골에서 아름답고 위대한 환대를 경험했고 자연과 운명 앞에서 자신을 비움으로써 자유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현실에 저항하려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 수동성의 자세로 삶을 바라봄으로써 그는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별한 아내에 대해 자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내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치유해준 것은 먹실 골 사람들의 환대와 자연이었을 것이다.


 고독과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나는 마치 밤의 무지無知앞에 선 것처럼 두렵고 떨렸다. 그럴 때마다 내 곁에 이 책 속의 할아버지(권상원 선생)와 그의 아들 K(권오정 대목大木)가 다가왔다. 숲 속의 나는 『월든』의 소로처럼 혼자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겸손과 환대의 힘을 가르쳐주었고, K는 ‘그리스인 조로바’처럼 거칠지만 넘치는 생명성을 보여주었다. (6쪽)


 작가에게 환대를 해준 먹실 골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글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서 위로받는 작가의 심정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산문들이 줄을 이었다.


부지런한 새들이 아침부터 온 숲을 아름다운 노래로 물들이고 있다. 새들은 아무래도 천상의 존재들 같다. 저들에게 ‘항구적인 슬픔’ 따위는 없을 것이다. 아침 안개가 푸른 숲을 파스텔 톤으로 그린다. 태양이 안개의 껍질을 벗기고 온 세상이 투명해지면 ‘항구적인 슬픔’이 이슬처럼 사라지기를. (44쪽)



 늘어난 꽃들이 공중에 떠서 바람에 하늘거리니 아지랑이처럼 감미로운 어지러움이 번진다. 은엽아지랑이는 뭔가 환상적인 ‘방황의 미학’을 가지고 있어서, 그 꽃들의 대기大氣 속에 끌려 들어가 흔들리고 싶어진다. 그 느낌은 마약처럼 깊고 도피적이다. (107쪽)


 꽃의 쓰임새는 예술의 쓰임새와 유사하다. 그것은 생계 너머에 있는 생계다. 꽃과 예술의 ‘아름다움’은 신이 인간에게 보너스로 준 선물이다. ‘선물’ 자체는 생계와 무관하지만, 생계 이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230쪽)



그리고 책 속에서 만난 그의 시 한 편이 왠지 가슴을 짠하게 했다.



         가을, 강진/오민석


   그대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니
   외로움을 피하지 마라



평론가인 그는 문학에 대한 언급도 자주 했다.


많은 작가가 문학을 무슨 고상한 취미 정도로 대하며 글을 쓴다. 그러나 지성과 새로움이 없는 글은 문학이 아니다(...) 좋은 작품은 앞 세대의 ‘전통’을 완성의 목표로 따르지 않고,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엘리엇의 말대로 ‘전통’이 없이 ‘개인적 재능’이란 없다. 이 ‘상호텍스트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예술의 가장 큰 적은 ‘반복’이다. 좋은 작가, 좋은 텍스트는 하나로 족하다. 예술가들은 ‘고갈된 형식’의 사막에서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찾아낸다. 훌륭한 예술작품들은 이러한 ‘분투’의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예술은 골방에서 밤새워 책과 씨름하고, 앞 세대의 전통과 마주치며, 그것과의 고독하고도 치열한 싸움을 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217쪽)


 좋은 평론은 좋은 작품을 만날 때 탄생한다. 좋은 작품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해석의 여지가 많으므로 평론가가 개입할 여지도 그만큼 많아진다. (257쪽)


 자연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문장은 낡는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매일 새로워지기 위함이나, 클리셰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매일 스스로 제 무덤을 파며 글을 쓴다. 훌륭한 작가는 자신이 쓴 것보다 훨씬 광대한 글의 지대가 있음을 감지하고 그 잠재성을 탐구하는 자다. (309쪽)



먹실 골 자연 풍경, 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로 아름답게 엮어진 이 산문집을 읽고 나니, 마음이 맑고 깨끗해졌다. 책에서는 드물게 해 보는 경험이다.

아름다운 영혼이 쓴 글은,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맑고 깨끗하게 변하게 하나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향기로운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김영옥 /교양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