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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16. 2022

아픈 몸을 살다/아서 프랭크/봄날의 책

  -외로울 땐 독서



저자는 자신의 심장마비와 암 경험을 환자의 입장에서 깊이 사유한 이 책으로, 1996년 미국 암 생존자협회(NCCS)의 나탈리 데이비스 스핑안(Natalie Davis Spingam) 작가상을 수상했다.


일반적으로 질병은 피해야 할 무엇이거나 공포의 대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질병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책의 서문인 <위험한 기회, 질병>에서 이렇게 말한다.


질병은 삶 일부를 앗아가지만 기회 또한 준다. 우리는 그저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회복이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답은 회복보다는 ‘새롭게 되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인 듯싶다.

질병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단순히 회복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질병을 통해 자기 삶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일 수 있다.


그는 질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 질병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자명하지도 않은 이유는 질병이 우리를 다르게 살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10쪽)


저자는 병을 회복한 후에도 늘 자신을 돌아보며 잘 살고 있나를 계속 묻고 있다고 했다. 아플 때에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이런 물음이야말로 삶을 새롭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계속 회복 중인 사람으로 살 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바로 지금 붙잡으려 애쓰게 된다. 여전히 암이 있는 사람처럼 사는 일은 귀하다.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아프게 된다면 그동안 시간을 잘 보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까? (210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할 때에는 몸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다른 욕망에 끊임없이 휘둘린다. 그렇지만 일단 건강을 잃고 나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질병이나 고통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들은 삶을 다르게 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연초에 집에서 실수로 발가락을 세게 접질렸는데 엄지발가락이 골절되었다. ‘발가락 하나쯤이야’, 하고 처음에는 우습게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을 위해 입원해야 했고 병원에서 십일이나 있었다.

병실에 있을 때는 깁스한 다리 때문에 화장실을 내 맘대로 갈 수가 없었다. 화장실 갈 때마다 병실 도우미를 호출해서 휠체어를 타고 가야 했다. 병원에서는 긴장해서인지 화장실을 평소보다 더 자주 갔다. 화장실 갈 때마다 도우미 눈치를 보며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땐 발의 통증보다 화장실을 내 발로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할 때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아플 때에야 비로소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고 있던 여러 욕망들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는 심각한 질환도 아니었고 잠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이었는데, 삶을 원점에서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퇴원하고 몇 개월이 지나면서 발가락은 거의 회복이 되었다. 내 발로 화장실만 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간절하게 생각한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동안 나는 삶에 과연 얼마나 만족하고 살았을까. 예전처럼 불만과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욕망이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아팠을 때의 그 간절한 바람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저자가 말한 “회복보다는 ‘새롭게 되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에 실패를 한 것이다. 병을 앓은 데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프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다시 한번 아팠던 그때를 복기할 필요를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다.


그는 또 환자를 그냥 하나의 객체로 보는 의료진에 대해 느꼈던 점을 논리적으로 차근차근하게 말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학은 통증이 삶에서 갖는 의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통증은 질환의 증상일 뿐이다. 의학은 아픈 사람의 통증 경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며 치료법이나 관리법에만 관심을 둔다. 의학은 분명 몸에서 통증을 줄여주지만, 그러면서 몸을 식민지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학의 도움을 구하면서 맺는 거래 조건이다. (87쪽)


의사를 피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질병이라는 드라마에서 의사들이 무대 중앙을 독차지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위험하다. 의사를 거부하면 당장 몸이 위험해질 것이고, 의사들이 드라마를 차지하도록 둔다면 그들은 질환이 이야기의 전부가 되도록 각본을 쓸 것이다. (87~88쪽)


 의료진은 직업군으로 나누어볼 때, 서비스업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왕왕 있다. 환자들은 약자이고, 그들은 강자일까?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단순한 의료인들 수의 부족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얼마 전 병원에 화재가 났는데도 환자를 보살피다가 환자들과 함께 죽은, 현은경 간호사 같은 훌륭한 분들도 있다. 분명 그런 분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소수인 것 같고, 대다수가 환자들이 의료진의 눈치를 보게 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나만의 편견일까?


 그리고 저자는 환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내 의식이 종양을 발생시키지 않았듯 의식이 종양을 사라지게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몸에 경이로워하고 몸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살기를 욕망했지만 삶 자체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었다. 자신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몸 나름의 지혜에 따라 몸이 변하도록 내버려 두자 마음이 훨씬 평화로웠다.(136쪽)


 질병은 다른 누군가에 맞서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길고 고된 노력이다. 어떤 사람은 살아남아서 승리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승리한다. 아픈 사람과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암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암과 씨름해야 하며, 의지대로 되었는지 보다는 이 ‘씨름’이 이미 온전하다는 믿음을 중요시해야 한다.
아프다는 것은 믿음과 의지 사이에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143쪽)


 저자는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또 그의 고통을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럴 때 환자의 고통이 줄어든다고 했다. 환자 주위의 의료진이나 가족과 지인들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이다.


 인간의 고통은 고통을 함께 나눌 때 견딜 만해진다. 누군가가 우리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고통을 보낼 수 있다. 고통을 알아봐 주면 고통은 줄어든다. 이 힘은 설명될 수 없지만 인간의 본성 같다. (165~166)


그는 아프고 나서 우리 몸의 경이로움에 대해 천착했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했다.


 질환은 먼지일 뿐인 우리 몸의 일부다. 우리가 삶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질환이 우리 몸의 일부라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인간이기에 온 힘을 다해 질환에 맞서지만, 또 인간이기에 우리는 죽는다. (180쪽)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언젠가는 죽는다는 절대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죽음 앞에서는 인간은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는 질병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렇게 강조했다.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죽음은 삶의 적敵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 위해 우리는 질병을 존중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190~191쪽)



저자는 ‘개정판 후기’에서 가슴 따스한, 희망의 이야기로 글을 맺었다.


질병이나 삶에서 마주치는 다른 재앙 때문에 언제나 놀라겠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을 것이며 어디로 가든 괜찮을 것이다. 어디로 가든 그곳에서 새로운 나의 일부를 찾을 것이고 선善에 이바지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 신은 창문을 닫으시면서 문을 여신다. (246쪽)



이 책은 단순히 질병 회복기가 아닌,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의 이야기로 읽혔다.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병이나 예기치 못했던 일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늘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신은 ‘작은’ 창문을 닫고, 더 ‘큰’ 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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