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겨울은 길고 추웠다. 눈도 내리지 않는 맵고 바람 센 날들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들이 나와 놀던 공터에는 돌개바람에 휘말린 빈 비닐봉지와 휴지 조각들만이 사나운 흙먼지와 함께 피어올랐다.
큰어머니는 마당의 수도가 얼어 터질까 봐, 수도를 꼭지 부분만 남겨두고 우일이가 입던 노란 잠바로 꼭꼭 싸두었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아 항상 물을 조금씩 틀어두었다. 사촌들은 우일이의 잠바를 입고 있는 수도를 가리키며 오줌싸개 우일이, 울보 우일이,라고 놀려대었다. 우일이의 잠바를 두르고 언제나 물을 흘리고 있는 수도는 마치 조그만 우일이가 마당 가운데 혼자 서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11쪽)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77쪽)
우일아, 우미야. 누군가 부르는 듯한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철길 둑의 마른풀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 어둠 속에 낮게 낮게 가라앉으며 흐르는 개천의 물소리에 섞여 그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우주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라고 우미라 이름 짓고 우주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되라고 우일이라 이름 지어 그렇게 부르던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게 부르던 마음이 이제사 내게로 와 들리는가 보다. (170~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