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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김훈 산문 /문학동네

-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김훈의 문장들을 무더기(?)로 만나서 즐거웠다. 그의 문장들을 읽는 동안, 내 영혼이 충만해지는 듯했다. 그의 산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필심처럼 단단하고, 좋은 시처럼 읽는 맛이 탁월했다. 문장만으로 이런 즐거움을 주는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 같았다.


그의 문장을 통과하면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사물들과 풍경들이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변신한다. 연필로 썼기 때문일까. 풍경들은 근원의 모습을 드러내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의 비의祕意를 슬쩍 보여준다.


김훈의 책에서, 술과 음악만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도 그럴 수 있음을 느꼈다. 이 책에서 특히 매력적이었던 문장들을 몇 개만 옮겨본다.


여름꽃들이 모두 질 때 억새는 홀로 피어나서 바람 속으로 꽃씨를 퍼뜨린다. 풍매風媒하는 풀꽃들은 벌과 나비를 부르지 않는다. 억새꽃은 향기도 없고 꿀도 없다. 생김새는 초라하고 색깔은 희뿌옇다. 꽃씨는 가볍고 또 작아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억새 꽃씨는 바람에 흩어지는 미립자다. 억새는 바람의 풀이다. 억새가 가진 것은 저 자신 하나와 바람뿐이다. 그래서 억새꽃은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이 혼백 안에 가을빛이 모여서 반짝거린다. 작은 꽃씨 하나하나가 가을빛을 품고 있다. 가을 억새는 날마다 말라가면서 이 꽃씨들을 바람에 맡긴다. 꽃씨들이 모두 흩어지면 억새는 땅에 쓰러지고 가을은 다 간 것이다. (16~17쪽)


공원 안 동물원의 두루미는 햇볕 비치는 자리에 외발로 서서 목을 틀어 머리를 죽지 밑에 파묻고 있다. 아이들이 불러도 두루미는 쳐다보지 않는다. 두루미는 한쪽 다리로 한나절을 서 있으면서도 다리를 바꾸지 않는다. 어떤 때는 흙을 파고 들어앉아서 사람 쪽을 외면하고 있다. 두루미는 시베리아를 오가는 철새인데, 사람한테 붙잡혀서 갇혀 있다. 가끔씩 날개를 펴고 높은 소리로 울면서 철장 안을 날아보는데, 그때 두루미는 가장 불쌍하다.
두루미는 얼만 전까지 한 마리였는데 그 후에 짝을 지어 주어서 지금은 두 마리다. 이 두루미는 금실이 안 좋아서 늘 따로따로 논다. 한 놈은 저쪽에서 외발로 서 있고, 다른 놈은 그 반대쪽에서 외발로 서 있다. 두루미에게는 대체 어떤 외로움이 있다는 것인가. 가을에 두루미는 더 쓸쓸해 보인다. 저런 서먹한 금실로 어찌 겨울을 나겠는가 싶다. (19~20쪽)


낙타의 발바닥은 두껍고 넓다. 낙타는 그 발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디딘다. 낙타는 지그시 땅바닥을 밟는다. 낙타의 종족은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수만 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견딤과 참음의 형질이 유전되어서 갓 태어난 낙타 새끼조차도 늙음의 표정을 지니고 있다. 호랑이나 사자, 원숭이의 어린 새끼들은 저네들끼리 장난치고 까불고 뒹구는데, 낙타의 새끼들은 별로 부산을 떨지 않는다. 견딤과 참음의 수만 년 세월 속에서 낙타는 구도자나 순례자와 같은 운명의 표정에 도달했을 것이다. 낙타는 목 밑의 피부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를 높이 쳐들어서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갈 길이 멀기 때문일 것이다. 낙타는 주저앉아서도 먼 곳을 보고 있다.(144쪽)


나는 무말랭이도 좋아한다. 무말랭이를 씹으면 섬유질의 골수에 배어 있는 가을 햇볕의 맛이 우러난다. 고소하고 보숭보숭하다. 이 햇볕의 맛을 섬유질 안에 저장해서 인간의 입속으로 전해주려면 무밖에는 없다(...) 무는 제맛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햇볕을 받아들여서 저장할 수 있다. 무말랭이는 말라서 질기다. 무말랭이는 천천히 오래 씹어야 햇볕의 맛이 우러난다.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돌아온 아이들의 뒤통수 가마에서도 이런 햇볕 냄새가 나는데, 애들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뿐 아니라 먼지 냄새와 땀냄새가 섞여 있다. 이 냄새는 살아서 뛰노는 아이들의 냄새다. 요즘엔 이런 아이들을 안아주기 어렵다. (217쪽)


겨울이었다. 하늘이 찢어질 듯이 팽팽했다. 눈이 내려서 대가야박물관 뒤쪽 지산동 능선의 옛 무덤들이 하얬고, 낮이 저물고 저녁이 되니 눈에 어둠이 스며서 무덤들은 파랬다.
밤하늘에 별들이 돋아나서, 끝이 없었다. 별들은 어둠의 먼 저쪽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별들은 돋아났다기보다는 배어 나왔다. 별이 보이지 않던 어둠의 자리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둠의 저쪽에서 희미한 빛의 그림자 또는 가루 같은 것이 어른거리다가 점점 다가오면서 뚜렷해졌다. 별들은 다가오고 다가온다(...)
귀 기울이면,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음악소리가 별들 사이를 흐르는 것 같았는데, 사람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43쪽)


일몰이면, 흩어지는 색은 이 무한공간에 가득 찬다. 색色이 즉 공空이어서, 공과 색은 다르지 않다. 장화리 해안선에 해가 질 때, 마주 앉은 연인들의 얼굴이 붉어지고, 얼굴은 점점 더 붉어져서 어두워진다. 색들의 미립자가 공기에 가득 차서 색은 사람의 들숨에 끌려 몸안으로 들어오고 허파와 창자가 새로운 시간의 색으로 젖는다. 장화리 일몰의 색들은 어둠 속으로 소멸했다가 밝은 날 아침에 울진 죽변 등대에서 일출의 빛과 색으로 살아난다.
밤의 어둠 속에서 도라지의 흰색과 보라색, 일출과 일몰의 색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인가. 어렸을 때 하던 걱정을 나는 지금도 한다. (356쪽)


이 책은 문장들의 보고(寶庫) 같아서, 다 옮기기엔 그 양이 너무나 많다.

이유 없이 마음이 허하거나 쓸쓸할 때, 꺼내어보면 서늘해졌던 마음이 다시 따스해질 것 같은 글들이다. 글에도 힘이 있음을, 새삼스레 발견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밖이 흐리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김훈의 글은 이런 날 읽어도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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