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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Nov 22. 2022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김범석 지음/흐름출판

 -외로울 땐 독서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유한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는 그 마지막 시간을 영원히 오지 않는 미래처럼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로 항암치료를 통해 암 환자의 남은 삶이 의미 있게 연장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며’에서 그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환자가 의사를 먹여 살리는 셈이고, 때로는 환자가 의사를 치료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환자들의 선택이, 그들이 꾸려가는 시간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내게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고 정면 교사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삶과 죽음으로 살아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생의 숙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선생님이었다(...)
어떤 죽음들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어떤 죽음들은 몹시 가슴 아프게 했으며, 어떤 삶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것을 복기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기록을 남겨왔다.



 그의 글에서 그가 왜 이 책을 내게 되었는지 대략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가 만난 환자들은 죽음 앞에서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끝까지 죽음을 부정하면서 삶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왜 그토록 다른 반응을 하였을까.

어떤 죽음이 아름다운 것일까. 죽음과 아름다움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지만, 죽음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 달랐다.

어떤 죽음은 보기에 아름다웠고, 또 어떤 죽음은 민망했다. 추측컨대 각각 삶을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대한 것 같았다. 각각 다른 죽음의 모습을 보니, 살아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죽음은 삶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었을까?

저자는 그가 치료했던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볼 때에 삶의 의미를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 것 같다.


 그는 ‘이야기를 마치며’에서 이야기를 이렇게 맺고 있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사실 죽음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또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다만 그것이 타인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죽음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만날 때에는 정신이 번쩍 든다. 자기 역시 그 죽음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질 때면 죽음은 다시 저 먼 곳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된다. 나 역시 그러했고,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하기 쉽지 않다. 막연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의 시간이 무한하다고 착각하며 산다면, 삶을 생각 없이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 언젠가 도착할 그 종착역을 생각할 때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마무리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삶의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미리 그 마무리를 차근차근해나간다면  덜 당황할 것이다.


 일상에서 늘 죽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삶을 보다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삶의 고난이나 고통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러니 죽음이 곧 삶의 선생이 아니겠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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