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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Nov 23. 2022

죽음을 배우는 시간/김현아 지음/창비

  -외로울 땐 독서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의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저자는 현재 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있는데, 그녀는 30년을 의사로 살면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수없이 지켜봤다고 한다. 현직에 있는 전문 의료인의 말이니 새겨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시작하며’에서의 그녀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병원 시스템 안에서 목격되는 죽음의 모습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여러 정보를 최대한 솔직하게 전달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묏자리를 보고 수의를 마련하는 것이 준비라고 착각하는 현실에서, 병원의 ‘죽음 비즈니스’에 속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되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함이다. 죽음의 각 단계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일종의 매뉴얼처럼 읽어도 좋겠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의 저마다의 답을 찾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간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니 정신 차리고 글을 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저자는 우선 죽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현대인들은 ‘무병장수’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무병장수’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그건 사실이다. 나도 무병장수는 아주 극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100세 시대’를 운운하며 돈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물론 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돈보다 건강을 더 잘 관리해야 하고, 미래에 반드시 다가올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저자가 말하기를, ‘현대의학의 가장 큰 숙제는 늘어난 수명을 최대한 남의 도움 없이 신체기능을 유지하며 누리다 짧은 죽음의 과정을 거쳐 영면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저자는 어떤 사람들은 죽음과 노화조차도 의학이 해결해줄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의료계에서도 통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건강할 때 미리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많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같은 것이다. 가망 없는 치료를 위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면 환자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가족과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의미 없는 치료로 필요 없는 고통을 받게 되고, 그에 따른 의료 경비 또한 만만치 않다고 했다.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환자는 두 가지 방법의 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 연명치료와 완화치료다.

 연명치료는 죽음의 각 단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모두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본다. 회복의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사실 무의미하고 환자에게 고통만 가중시킨다.

 완화치료는 환자의 모든 증상을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통증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치료를 목표로 한다.

 이런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환자와 보호자는 의논해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유한한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도 죽음을 막거나 피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직시한다면 죽음을 좀 더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때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여유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죽음을 함께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9년 영국에서 발간한 『밀레니엄 백서』Millennium Papers에서 좋은 죽음의 조건 12가지를 소개했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통제할 수 있다.

·죽음에 임했을 때도 존엄성과 사생활을 보호받는다.

·통증을 완화하고 증상을 관리받을 수 있다.

·죽을 장소에 대한 통제와 선택이 가능하다.

·전문가로부터 조력을 얻는다.

·영적·정서적 요구를 충족한다.

·어디에서든 호스피스 간호를 받을 수 있다.

·임종 시 함께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생명 유지장치를 쓸 것인지 사전에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다.

·작별을 고할 시간을 갖는다.

·언제 떠날지를 예상하고,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하지 않는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최소한 죽음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둔다면 좀 더 나은 임종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 뒤편의 에필로그에는 저자의 ‘나의 엔딩노트’가 실려 있다.

 저자가 자식에게 남기는 일종의 유언장 같아서 울컥했다. 의사답게 본인이 암이나 치매에 걸릴 경우에 대비해서, 자식들에게 미리 부탁하는 글이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지만, 죽음의 형태는 다 다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슬프다.


 저자의 엔딩노트는 이렇게 끝맺었다.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의 뜻을 잘 이해하고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죽음이 있기에 삶도 있는 것이고 죽음은 삶과 결국 같은 것이란다.



*추신:

어쩌다 연달아 죽음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살아있음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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