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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Dec 04.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열림원

 -외로울 땐 독서



제목을 보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문득 생각났다. 죽음을 앞둔 노학자와의 대담집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선생이 누구인가?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어령 선생을 떠올릴 때는 냉철함이나 차가움이 느껴진다. 이어령 선생과 대담을 한 사람은 김지수다. 책날개의 설명으로는 그녀는 <조선비즈>에서 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로 천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들의 대단한 대담집일 것 같아서 얼른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의 문장 하나가 눈길을 확 끌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이어령 선생이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절절하게 느꼈던 감정을, 저 문장 하나에 담았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어쩌면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삶이 사실은 ‘선물’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늘 죽음 앞에서야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림자는 빛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굉장히 냉철했고 이성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담 내용이 나같은 일반 독자들이 읽고 받아들이기에 좀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기자가 대중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대담 수위를 좀 조절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죽음, 혹은 삶의 마무리에 대해, 내가 너무 감성적인 것을 기대해서였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책 제목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 ‘마지막’이라는 것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하는, 번뜩이는 어떤 말씀 같은 것을 기대했다. 내가 바라던 것과 책이 어긋난 듯한 혼란스러움이 약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혼란스러움 가운데서도 반짝이는 보석들이 보였다. 책 속에 숨어있던 보석들을 단번에 찾아내기에는 내 안목이 많이 부족했다. 그 귀한 것들을 가슴에 품고 싶어 옮겨둔다.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153쪽)


- 머릿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삶에서 얼마나 많은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을까?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삶은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까를, 생각해보게 했다. 간략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다.


 이어령 선생은 딸을 먼저 보내고 가장 슬펐던 것은 그때 그 말을 못 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가족들과 서로 오해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어.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 걸’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 걸, 그때 고맙다고 할 걸······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그래서 너희들도 아버지한테 ‘이 말은 꼭 해야지’ 싶은 게 있으면 빨리 해라. 지금 해야지 죽고 나서 그 말이 생각나면, 니들 자꾸 울어(...)”(286쪽)


- 내게는 이 말이 가장 눈물겨웠다. 단순한 그 말! ‘그때 그 말을 할 걸!’이라는 말... 순간순간 깨어있는 삶을 살 때에야 가능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한 말이었다. 선생의 높고 현학적인 그 어떤 말씀보다도 이 말이 와닿은 것은, 너무나 순수한 감정에서 나온 것이어서였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293~294쪽)


-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주어서 깜짝 놀랐다. 삶과 죽음을 아주 단순하게 설명했으나 그 아득한 높이와 깊이의 심연에 이르기엔, 나의 사고 영역이 너무 얕았다. 그렇지만 삶의 ‘화두’로 삼아보고 싶다.



“사형수도 형장으로 가면서 물웅덩이를 폴짝 피해 가요. 생명이 그래요. 흉악범도 죽을 때는 착하게 죽어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구원이에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최악은 없다고. 노력하면 양파 껍질 벗겨지듯 삶에서 받은 축복이 새살을 드러낸다고. 빅뱅이 있을 때 내가 태어났고, 그 최초의 빛의 찌꺼기가 나라는 사실은 ‘수사’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고. 여러분도 손놓고 죽지 말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끝까지 알고 맞으라고. “종교가 있든 없든, 죽음의 과정에서 신의 기프트를 알고 죽는 사람과 모르고 죽는 사람은 천지 차이예요.”(319쪽)



-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라는 것인가. “빅뱅이 있을 때 내가 태어났고, 그 최초의 빛의 찌꺼기가 나라는 사실은 ‘수사’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는 말에 눈이 부셨다. 머리로는 그 의미가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가슴이 환희의 감정으로 물결쳤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320쪽)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웃음).”


 


그가 책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끝’이란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말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계속 피고 지는 무수한 꽃들로 영원히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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