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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Dec 25. 2022

루카치를 읽는 밤/조현/폭스코너

 -외로울 땐 독서




 에세이집은 그리 자주 읽지는 않고, 가끔씩 읽는 편이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번에 읽은 에세이집의 작가는 조현이다. 내가 모르는 작가다. 책날개에, 그는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루카치를 읽는 밤》이 그의 첫 산문집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에세이집을 읽을 때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치 친한 친구랑 따듯한 차를 마시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뜨끈한 온돌방에 펼쳐진 포근한 솜이불속에 두발을 쏙 집어넣은 채로 말이다. 그만큼 편안했다.


 글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책 읽으며 웃고 고개도 가끔 끄덕이며,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타인에게 공감도 하니까 말이다.

 특히 외로울 땐, 책은 정말 멋진 친구가 되어주고 동반자가 되어준다는 것을 느낀다. 책은 세상의 모든 발명품 중에서 단연 최고의 자리에 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각설하고, 공감을 느꼈던 글들을 옮겨본다.

그런 글들을 다시 읽으며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는지, 한 번 더 음미해볼 수 있어서 좋다.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없을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하루에 한 페이지씩이라도 뭔가 글을 써보자 하는 그런 결심을 말이다. 직장 생활에 쫓기니까, 혹은 시간이나 재능이 없으니까, 이런 생각은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는 어떤 상념이 번개처럼 나를 내리쳤던 것이다. 그렇다. 하루에 한 장의 원고를 쓰면 나중에 만장도 쓸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결심대로 하루에 한 장씩 썼다. 그리고 나는 그해 겨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결심하고 첫발을 내딛기. 대체로 인생에서 꿈을 이루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하다. 다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속에 지글거리며 달아오르는 숯불을 오래 간직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맨 처음에는 망설이듯 불씨 하나를 옮기는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마치 새로운 계절이 먼 우주에서 달려오는 듯한 어떤 시 한 편을 읽으며 시작되듯이 말이다. (27쪽)


 덩굴식물이나 관엽식물처럼 살아 있는 식물의 일부를 얻어와 보살피는 것도 좋아한다. 골목길을 걷다가 내다 놓고 기르는 화분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잠시 들여다보곤 한다. 그건 미술관에서 맘에 드는 그림 앞에 멈추는 것과 같은 기쁨. 그리고 그게 덩굴식물 종류며 대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주인을 불러 반 뼘 정도 덩굴식물을 얻으려고. 낯선 이의 부탁에 고개를 갸웃하던 주인은 이내 미소를 짓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한 분의 예외도 없었다. 반 뼘의 호의, 반 뼘의 기쁨. 그렇게 데려온 아이는 물을 채운 작은 유리병에 꽂아둔다. 며칠을 두면 잔뿌리가 나오는데 그때 화분에 옮겨 심는 게 요령. 미술관에서 담아온 근사한 색채가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 듯 그렇게 데려온 식물이 나의 보살핌으로 온전히 뿌리를 펴고 하나의 독립된 생명으로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인생의 기쁨이다.(79~80쪽)


 만약 바위나 구름의 인식체계를 가지고 이 지구를 살아간다면 굉장히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발흥하여 결국은 핵전쟁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멸종할 때까지의 사건은 바위로 보자면 숨 한 번 내쉴 시간에 이루어지는 찰나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유리장이 천천히 녹아내리는데 천만 년이 걸리는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욕구가 다소 부질없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즉 우주적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일조 분의 일초 동안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너무나 자기 자신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108쪽)


 비가 좋다.
 자주, 비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비는 은밀하고 촉촉하게 추억을 상영한다.

 비가 오면 어떤 종류의 기억들이 막 뜯은 원두커피처럼 고소한 향을 풍기며 내 마음에 새초롬히 내려앉는다. 마치 전봇대에 조르륵 앉아 있는 참새들마냥. 그러면 난 그 촉촉한 깃털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섬세하게 손질하는 것이다. (109쪽)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깊은 비밀이 있다. 글에 진정성이 담기는 것은 그 비밀이 가식 없이 발화됐을 때다. 섬과 섬이 바다 밑에서 흙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인간의 모든 비밀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비밀을 꺼내놓으면 본능적으로 진짜인지 아닌지 번뜩 알아챈다. 마치 선생(황현산)의 글에서 슬픔의 영토를 자주 발견하는 것처럼. 특히 글쓰기에서 그렇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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