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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r 28. 2023

그림의 역사/데이비드 호크니, 마티 게이퍼드 지음

 -외로울 땐 독서

그림의 역사/데이비드 호크니, 마티 게이퍼드 지음/미진사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국 주간지 『스펙테이터 The Spectator』의 미술 비평가인 마틴 게이퍼드가 이메일과 스마트폰으로 삶과 예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읽었을 때였다.


『그림의 역사』는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에서처럼, 데이비드 호크니와 미술 비평가인 마틴 게이퍼드가 같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을 정리한 것이다.

 다양한 시대의 여러 화가들의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책이 두껍고 무겁다. 그러나 유명한 그림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그림 도록으로만 봐도 만족할만했다.

『그림의 역사』는,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에 비해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미술 분야에 문외한인 내가 읽기에는 다소 버거웠다. 그러나 책 제목처럼 그냥 ‘그림의 역사(A History of pictures)’자체를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나 같은 일반인이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역자는 일러두기에 이렇게 썼다.


*picture와 painting의 차이

 일반적으로 picture와 painting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픽처(picture)는 전통적인 페인팅(painting)뿐만 아니라 사진, 영화 스크린, 스마트 폰과 같은 평평한 표면까지 포괄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저자의 뜻을 살려

painting은 ‘회화’로 picture는 ‘그림’ 또는 ‘픽처’로 번역하였다.


이런 구분은 다소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지만, 읽다 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서문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는 이 책의 주제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픽처(picture)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노트북 화면에도, 핸드폰에도, 잡지와 책, 그리고 신문에도 있으며, 심지어는-오늘날까지-벽에도 걸려 있다. 우리는 말 못지않게 픽처를 통해서도 생각을 하고, 꿈을 꾸며, 우리 주변 사람들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한다.
그러나 픽처는 이제껏 한 번도 독자적인 카테고리로 간주된 적이 없다. 회화나 사진, 혹은 영상처럼 픽처의 여러 가지 유형들(types)에 관한 역사는 많지만, 픽처 자체-즉, 3차원의 세계를 캔버스, 종이, 시네마 스크린, 스마트폰과 같은 평평한 표면 위에 표현한 것-에 대한 역사는 없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묘사된 픽처들 사이의 연관성과 상호작용.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1. 픽처와 리얼리티’ 챕터의 주제인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본다’에 대해, 데이비드 호크니는 ‘픽처’를 이렇게 말했다.


 쓰여진 모든 글은 어떤 의미에서는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픽처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현실을 보여주기만 하는 픽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24쪽)


-글과 픽처에 대한 호크니의 언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떤 대상, 그것들 자체가 예술일 수도 있겠지만,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결국 감상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크니가 말하고자 한 정확한 의미는 아닐지라도.


‘2. 자국 만들기’ 챕터의 주제인 ‘자국은 왜 흥미로운가?’에서, 호크니의 ‘자국’에 대한 생각이 무척 흥미로웠다.


 종이 위에 자국을 두세 개 정도 내 보자. 그러면 그들 사이에 관계가 생겨난다. 그 자국들이 다른 무엇인가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선을 두 개 그리면, 그것들은 사람 두 명이나 나무 두 그루로 보일지도 모른다.
 첫째 자국이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둘째 자국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사물들을 자국으로 읽는다. 이 모든 것이 자국을 묘사로서 파악하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다. (34쪽)


-자국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감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뭔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본능이 어쩌면 창작 행위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닐까.


 ‘4. 시간과 공간의 픽처’ 챕터 주제인,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에서, 호크니는 ‘기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만약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여러 요소들이 거기에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전에 그 장소에 가 봤다거나,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78쪽)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어떤 대상-그것이 사람이든 장소든 간에- 을 볼 수는 없다. 대상의 평가는 결국 기억에 지배를 받은 결과물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10. 카라바조, 그리고 비밀 카메라’ 챕터, ‘카라바조가 헐리우드식 조명을 발명했다’에서, 호크니는 자연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연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을 광학적으로 투영한 결과인가? 지난 수 백 년간 사람들은 사진과 동일한 것들을 봐 왔다. 사람을 투영한 것이든, 사물이나 장면을 투영한 것이든 간에,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투영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묘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지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나는 카라바조가 카메라를 이용해서 일종의 드로잉을 함으로써 픽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혹은 인물의 신체 일부를 하나씩 차례대로) 캔버스에 투영해 봤다. 그의 회화들은 여러 투영 이미지를 콜라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72쪽)

 

도구를 이해한다고 해서 창작의 마법까지 해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작의 마법은 결코 해명할 수 없다. 위대한 작품에는 반드시 비밀이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무엇으로도 밝힐 수 없는 비밀 말이다. 광학 도구들이 자국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회화를 그려 주지는 않는 것이다. (204쪽)


-카라바조가 카메라를 이용해서 드로잉을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지만, 그의 창작의 비밀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에는 결코 밝혀지지 않는 비밀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비밀, 그건 천재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힌, 이 책의 주제인 ‘다채로운 방식으로 묘사된 픽처들 사이의 연관성과 상호작용’을 다 다루기에는 내 역량이 워낙 부족했다.

 책 내용이 워낙 방대했다. 소경이 코끼리 더듬듯이 겨우 책장을 넘겼으니 책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분야를 조금이나마 맛본 것에 만족하려 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창작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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