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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y 20. 2020

글의 힘

  -마음의 고샅길


 또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밤에 자려고 누우면, 침실 천장 쪽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밤에는 작은 소리도 신경에 거슬린다. 벌써 한 일주일쯤 되었던가. 

 한 번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자꾸 신경이 쓰여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청소기 돌리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러닝머신 같은 운동기구도 아닌 것 같았다. 초저녁에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데, 밤 11시쯤이면 그 소리가 시작되었다. 

 도대체 저 소리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밤 11시에 다른 집에 인터폰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소리가 날 때 바로 연락을 해야 집주인도 소음을 인식할 것 같았다. 소음을 내는 집주인은 그 소음이 다른 집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 11시에 소음을 내기 시작 할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늦은 시간이어서 한참을 망설이다 경비실에 인터폰을 했다. 윗집에 연락해서 소음 확인을 좀 해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아서, 다시 경비실에 연락해보았다. 경비 아저씨는 그 집에서 인터폰을 안 받는다고 했다. 자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 집 인터폰이 고장 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어서 자려고 누웠다. 그렇지만 그 소음은 계속 나고 있었고, 그날은 12시 반까지 소음이 났다. 그 소음에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소음이 그치고 나서 겨우 잠들었던 것 같았다. 


 다음날 윗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자기 집은 수험생이 있어서 일찍 잔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밤에는 자느라고 인터폰을 못 받았다고 했다.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늦은 시간에 인터폰 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함께 걱정해주었다. 그러면서 안마의자 같은 것도 요즘 소음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소음이 안마의자일 수도 있는 것일까? 소음의 정체는 갈수록 더 아리송해지기만 했다. 

 윗집의 소음 문제가 아니라면 소음의 출처를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파트 내의 소음은 그 건물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확히 소음의 출처를 알아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민하다가 경비실에 갔다. 경비 아저씨에게 윗집의 소음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경비 아저씨는 관리소에 전화해서 방송을 부탁해보라고 했다. 

 관리소에 전화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저녁 무렵에 방송이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우리 집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고, 이웃을 배려해서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 소음을 내지 말라고 했다. 소음을 낸 집에서 그 방송을 듣는다고 해도 자기 집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다른 집에까지 들리는 소음이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소음을 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소음을 낸 집주인은 전혀 자기 집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답답했다. 언제까지 저 소음을 견뎌야 할까.


 퇴근하고 돌아온 딸에게 소음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 ‘에어 드레서’의 소음도 꽤 시끄럽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누가 에어 드레서 소음을 녹음해서 올려놓은 것이 있었다. 그 소리를 들어보니, 내가 들었던 소리와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일주일 전쯤부터 들리기 시작했으니, 누군가가 에어 드레서를 새로 들여놓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느 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은 층 이웃 세 집을 찾아다니며 물어봤다. 같은 층에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아기들 때문에 모두 일찍 자고, 에어 드레스도 없다고 했다. 다시 난감해졌다. 

 혹시나 하며,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몇 집을 방문해서 물어봤지만, 모두 아니라고 했다. 어떤 집은 인터폰 확인만 하고 문을 아예 열어주지 않는 집도 있었다. 아래층 주민이고 아파트 호수까지 얘기했는데도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리 동에 사는 이웃을 일일이 다 찾아가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민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엘리베이터에 이 상황에 대한 글을 써서 붙여보는 것이다.

우리 동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엘리베이터를 다 이용할 테니까, 이 상황을 알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글을 써서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았다. 



<엘리베이터에 붙였던 글>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그날 밤부터 소음이 나지 않았다. 거룩한 밤은 아니었지만, 아주 ‘고요한 밤’이었다. 누군가가 자기 집에서 난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소음을 내는 것을 중지한 모양이었다. 


 그날 밤만 우연히 그랬나, 싶어서 사나흘을 더 기다려보았다. 계속 고요한 밤이 이어졌다. 관리소에 방송을 부탁했고, 이웃집을 가가호호 방문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소음이, 엘리베이터에 써 붙여 놓았던 종이 한 장의 힘으로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었다. 물론 그 소음의 정체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 붙여 놓았던 종이를 떼고 다시 새 글을 써서 붙여놓았다. 

 ‘소음이 사라졌어요! 배려에 감사합니다!’라고.


 이번 일을 통해, 글이 때로는 말보다는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글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면, 삶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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