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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Nov 30. 2023

어머니를 돌보다/린 틸먼 지음/돌베개

  -외로울 땐 독서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화 비평가인 린 틸먼의 자전적 에세이.


 전 세계적으로 노인들의 돌봄 문제가 큰 이슈다. 왜냐하면 평균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만 산다면 오래 사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 여생을 아프며 힘들게 살아간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어머니를 돌보다」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작가의 어머니는 ‘정상혈압수두증’이라는 병을 11년간이나 앓다가 98세에 돌아가셨다. 작가와 두 언니는 어머니를 여러 병원에서 치료받게 했고 다양한 간병인들을 고용해서 돌보았다.


 작가는 그녀의 돌봄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한때 이렇게 쓴 바 있다. “경험은 우리에게 경험을 신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서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것들이 항상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온화한 감정이 들었고, 때로는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 (11쪽)


 무척 솔직한 이야기다. 미국인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글 쓰는 작가의 태도는 진솔해야 하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돌봄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금기처럼 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인 관념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장기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다. 작가처럼,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낼 때 오히려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어머니를 ‘의무감’으로 돌보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대놓고 작가인 딸을 질투했고, 자기가 글을 썼더라면 더 잘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놀라웠다. 대부분의 한국의 전통적인 어머니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이 잘 되는 것을 원하는데, 작가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작가가 묘사한 바에 따르면, 어머니의 성격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있어 보였다.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예상했듯이, 틸먼은 이런 말을 했다.


 가족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고, 이보다 더 이상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언니들은 같은 사건과 관련 사건들에 대해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모든 사건은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 걸러지기 마련이고, 이것이 회고록과 구술사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화자의 솔직함, 화자가 기억하는 것, 화자의 삶을 이루는 사실들 못지않게 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 화자가 지닌 잘못된 정보와 편향도 중요하다.(11쪽)


 의무감에서든 사랑에서든 돌봄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린 틸먼은 11년간이나 어머니를 돌보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좋은 딸 노릇을 한 것을 후회했고 그 11년을 어머니를 위해 보내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친구는 놀라며 말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스스로가 대견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 희생이, 그걸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어머니를 위해 한 희생이 헛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생각도 내려놓아야 한다. (240쪽)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가는 ‘어머니’라는 한 인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자기를 낳아준 사람이고, 자기 출생의 근원처인 어머니가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아무리 어머니라도 한 인간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오랜 기간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고 또 돌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머니라는 한 인간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녀의 생각에 동의한다.

 사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함께 살지만, 가족은 어떤 면에서는 타인보다도 더 모르고 살 때도 있지 않은가. 가족이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에 대해 좀 더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 후회는 결국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워했지만 영원히 미워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가족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이 글을 썼음에도 나는 여전히 짐작만 할 뿐이다. 왜 어머니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에게도 영혼이 암흑에 빠진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떤 연유로 그랬는지도.

 어머니에게 물어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스스로에 대해, 소피 메릴 틸먼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원래 후회되는 것들이 많은 법이다.(247쪽)



 이 에세이는 어머니의 간병 기록이지만, 그 기록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노후의 돌봄 문제, 간병인 문제,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

이 문제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고, 거의 확정된 미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진짜 도래할 미래는 어떤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무(無)’가 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오직 현재에 철저하게 머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만이 진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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