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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20. 2024

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최철주 지음/중앙books

-외로울 땐 독서



- 홀로 인생을 마주할 줄 아는 용기와 자유에 대하여



 저자는 은퇴하면서 아내와 아들의 권유로 요리학원에 다녔다. 그는 한식·중식·양식 코스를 속성으로 마치고 배운 요리법으로 아내의 아침 밥상을 마련하는 일상을 시작했다.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상실감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한 ‘식사 챙겨주기’였다. 그리고 아내까지 떠난 후 그는 혼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요리’ 덕분이었다고 고백한다.


요리 공부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요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뚝배기 달걀찜도 만들어 보고 굴소스 야채볶음 등으로 영양식을 갖추어 먹었다(...)
 요리는 나 같은 독거노인이 생존 능력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작은 권력이며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20쪽)


 저자는 딸과 아내를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본인도 암에 걸려 수술받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 훈련으로 웰다잉 강사로 봉사하며, 고독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저자는 그런 고독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언젠가 내가 혼자 숨져있는 모습이 뒤늦게 발견됐다 하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 것을 아들 내외에게 여러 차례 일러두었다.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이 그러하니 아버지의 고독사를 섧게 여기지 말라 했다. 그건 불효가 아니다. 난 이대로가 좋아. 나의 평화를 위해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나는 독립생활을 하면서 자유와 고요를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즐겨왔다.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내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혼자 사는 삶의 자유를 과소평가하거나 우습게 여기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혼자 사는 것도 나쁠 게 없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질병의 파편들이 내 육신과 영혼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나는 크게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편안한 마지막 삶을 위해 소중한 내 시간을 쌓아가고 허물기를 거듭하다가 저 멀리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운명의 신에 내 몸을 맡기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31~32쪽)


 저자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고위급 관리나 재벌들의 노후생활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젊었을 때 성공가도를 달려서 부러울 게 없었던 사람들의 노후가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불행하게 보여서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삶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괜찮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족들과 잘 지내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조금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약 40여 년 동안 중앙방송 대표이사와 중앙일보 편집국장, 논설고문을 지내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딸과 아내를 먼저 보내고, 아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독거노인의 삶을 선택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노후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세월 앞에서는 그도 평등한 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주어서 마음이 짠했다.



 2년 전 겨울, 그는 자기 아파트에서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갖고 들어오려다 손잡이를 놓쳐 문이 닫혀버렸다. 그런데 도어락 건전지가 방전되어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내복 차림의 그는 경비실로 뛰어갔지만, 경비원은 그를 괴한으로 의심했다. 나중에 그의 형색을 보고서야 겨우 경비실 문을 열어주었고, 경비원이 자기 패딩을 그의 어깨에 씌워주었다. 그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엉뚱한 번호를 누르기도 했다. 그 순간 그의 심경이 창피함과 공포감으로 얼마나 복잡했을까.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일주일 동안이나 감기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기존의 자기 정체성에 엄청난 균열을 겪었을 것 같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늙는 일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엘리트였던 저자가 저런 일을 겪는다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늙으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싶었다.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그는 또 ‘삑사리 인생’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의 친구나 지인들이 한순간의 어이없는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누구나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노년기의 사고는 아주 심각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겪을 노후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인생이 한바탕 장애물 경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기의 실제 상황을 자세히 알고 나니, 현재의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듯이.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쓰면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제 삶의 일부분을 허물기로 작정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독자 여러분의 생각에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팔순을 넘은 저자는 그의 현재 삶을 통해, 홀로 인생을 마주하려는 용기와 자유를 보여주었다. 그에게 따듯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 나이에 도달할, 미래의 우리들에게도.


 이 책은 노년의 독자들에게, 그리고 노년을 앞둔 독자들에게, 노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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