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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ug 21. 2024

숙론/최재천 지음/김영사

  -외로울 땐 독서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프롤로그 들어가기 전에 저자는 ‘숙론’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표현해 놓았다.


숙론이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숙론에 대한 정의를 좀 더 자세히 했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 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19쪽)


-정치권에서 숙론을 잘할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해 쓸데없는 비방이나 욕설이 난무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숙론이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곳은 정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나라는 자칭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국가인데, ‘불통’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문인 동물행동학은 본질적으로 ‘동물정보통신학’이다. 그들이 서로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를 파악하면 그들 행동의 의도와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평생 동물들의 대화를 엿듣느라 귀 기울인 연구자로서 나는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에 관해서도 나름 깊이 숙고해 왔다. 오랜 숙고 끝에 얻은 결론은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통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잘되리라 착각하며 산다(...)
 소통은 협력이 아니라 밀당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소통은 당연히 일방적 전달이나 지시가 아니라 지난한 숙론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64~65쪽)


-그동안 우리는 소통에 대해 잘못 생각해 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것인데, 그걸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답답해했다. 원래 안 되는 것은, 밀당의 과정을 거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좀 더 성숙한 형태의 숙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숙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일단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리 있게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해야 한다.


 말과 글의 재료는 어디에서 오나? 살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게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말하기와 글쓰기에 가장 훌륭한 자료는 읽기가 제공한다. 코끼리 똥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 엄청난 양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많이 읽는 사람의 말과 글이 훨씬 풍성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란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도 않고 읽지도 않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독자들이 그나마 겨우 읽는 책들은 기껏해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종류들이다. 나는 그런 책 읽기를 ‘취미 독서’라고 부른다. 나는 취미 독서보다 ‘기획 독서’를 해아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독서가 진정한 독서다. 학창 시절 기회가 닿지 않아 배우지 못한 분석철학, 양자역학, 진화심리학 분야의 책들에 도전하는 기획을 세우고 공략해야 비로소 내 지식의 영토를 넓힐 수 있다. 독서는 ‘일’이다. 그래서 빡세게 해야 한다.(79~80쪽)


-독서는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로 해야 하고, 지식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는 기획 독서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독서를 통해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도해 보는 것이 좋겠다.



 저자는 숙론의 좋은 예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몽플뢰르 콘퍼런스 Mont Fleur Conference를 들었다.


 1990년 넬슨 만델라가 27년의 복역을 마치고 석방됐을 때, 인종격리정책 Apartheid을 기반으로 하던 남아공 사회는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1991년 케이프타운 몽를뢰르 콘퍼런스 센터에서 남아공의 차세대 지도자 22인이 자천 및 타천으로 모였다.

참석자들이 채택한 방식은 ‘시나리오 사고 scenario thinking’ 방법론이었다. 전략적으로 목표와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협의 과정을 거쳐 다수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채택하는 것이다.

 몽플뢰르 콘퍼런스의 성공 요인은 다양하고 다분히 적대적 이해관계를 지닌 참가자들이 대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데 있었다. 몽플뢰르 콘퍼런스는 좋은 숙론의 예로 볼 수 있겠다.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이 몽플뢰르 콘퍼런스를 통해 이뤄낸 사회적 합의가 우리나라에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가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 (160쪽)



그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게 본다고 했다.


조만간 대한민국은 어린이집에서 국회까지 언쟁이나 논쟁을 멈추고 기껏해야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 수준을 넘어 깊이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숙론의 꽃이 만개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가 존경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다.(209~210쪽)


-우리나라가 숙론을 할 수 있는 선진국의 경지에 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언젠가는 올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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