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지음/ 다다서재
가와우치 아리오는 일본의 논픽션 작가이다. 그녀는 이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로 제53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이 작품은 2022년 서점 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친구 마이티의 소개로 전맹인 시라토리 씨와 ‘필립스 컬렉션 특별전’을 보러 갔다. 마이티는 작가인 아리오에게 시라토리 씨에게 작품에 대해서 말해주라고 했다.
시라토리 씨는 극도의 약시로 태어나서 색을 본 기억이 거의 없고 ‘색은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자기가 본 것을 최대한 상세하게 말해주려고 했다.
작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의 ‘눈’이 되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서 그림을 볼 때와는 달리 시간을 들여서 자세히 보아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0분, 15분씩 들여서 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도중에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고, 처음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세세한 부분에 놀라기도 했다. 왠지 내 눈의 해상도가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림은 혼자서 관람하고 느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로 표현함으로써 내 생각의 문이 조금 열린 듯했다.(28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평소에 사용하는 뇌의 취사선택 기능이 꺼지고, 우리의 시선은 말 그대로 작품 위를 자유롭게 헤매며 세세한 부분에도 눈길을 준다.(155쪽)
작가는 그림을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혼자서 볼 때 무심코 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발견했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덕분에 그림에서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안내자에게 예술을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면 결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작가도 이렇게 말했다.
시라토리 씨는 내 팔꿈치의 움직임으로 계단 등을 감지해서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마치 서로의 몸이 서로에게 보조장치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주면서 안전하게 걷도록 해주는 장치. 시라토리 씨는 내 눈의 해상도를 높여주고 작품과 관계가 깊어지도록 해주는 장치. 그처럼 서로 몸의 기능을 확장하면서 연결되는 것도 그날의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35쪽)
재미있는 일은, 전시관에서 작가와 친구인 마이티는 같은 그림을 보았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느낌과 인상을 받았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건 아무래도 ‘보기’의 과학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시각이라 하면 ‘눈’과 시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뇌와 관련된 문제라고 한다(...)
사물을 보는 행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전에 축적된 지식과 경험, 즉 뇌 내의 정보다. 우리는 풍경이든, 예술이든, 사람의 얼굴이든, 전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기초해 해석하고 이해한다.(25쪽)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 등 데이터베이스를 정교하게 이용하면서 눈앞의 시각 정보를 뇌에서 취사선택하고 보정하여 이해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기억 정보에 기초하여 눈앞의 사물을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판단한다.(26쪽)
관람자는 뇌에 저장된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에 기초해서 작품을 본다고 했다. 그러니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끼거나 의미를 찾는 것은 관람자의 몫으로 그 결과에는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이 짙게 배어난다. 예술을 보는 행위의 재미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는 작품의 넓은 품이 시대와 사람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127쪽)
우리가 대상을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예전 경험과 기억을 통해서 대상을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한다. 예술 작품은 각각의 감상자 시선과 경험에 따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 감상법에 따로 정답이 없다.
작가는 미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친구인 마이티의 말을 빌려 이렇게 옮겨놓았다.
마이티가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서 작품을 보거나 만드는 행위가 소중하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말한 ‘그 사람이 자기자신으로서 본다’는 발언은 매우 흥미롭다. 마이티에게는 작가의 작품 제작, 미술관의 작품 전시, 관람자의 작품 감상, 이 세 가지 행위가 우열 없이 평등한 관계인 듯했다. 그리고 작품 제작부터 감상까지 이르는 일련의 계주에서 마지막으로 배턴을 받는 관람자에게는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마이티는 믿고 있다.
그 신념은 미술 감상에 올바른 지식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권위주의와 지식편향주의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것이다.(70~71쪽)
작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작품을 보는 것은, 서로의 견해를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은, 그림에 대해 함께 대화를 하면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폭넓게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폭넓게 바라보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작품을 보는 행위의 목적은 작품의 이미지를 서로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이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을 실마리로 삼으면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해하는 것, 모르는 것, 그 전부를 한데 아우르는 ‘대화’라는 여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감상과 해석이 같지 않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고, 그 덕에 내 내면의 바다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 (140쪽)
작가는 ‘필립스 컬렉션 특별전’을 보고 난 후에도, 시라토리 씨와 여러 차례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을 찾았다. 그 후 작가는 그때의 경험을 기록한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중편 다큐멘터리「하얀 새」와 장편 다큐멘터리「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미술을 보러 가다」를 공동 감독으로 제작했다.
가와우치 아리오 작가는 ‘전맹 미술 감상자’ 시라토리 겐지
씨를 취재한 중편 다큐멘터리 「하얀 새」를 찍을 때, 시라토리 씨의 친구인 호시노 마사하루 씨와 인터뷰했다.
그때 호시노 씨는 이런 말을 했다.
그림을 보는 활동 말이야 확실히 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런 활동으로 그림을 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해, 나도 겐지도.
그냥, 거기 있는 사람들과···함께하고 싶은 거죠.
작가는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시라토리 겐지 씨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싶었던 것은, 그림 그 자체보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얘기하고 웃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작가는 시라토리 씨와 미술관에 가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 대한 편견이 깨트려지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달을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따스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맹인 미술 감상자 시라토리 씨와 미술관에 가서 함께 그림을 본 작가의 경험을 통해, 예술과 인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게 한 책.
따스하면서도 유쾌한 예술여행의 여정을 함께 즐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