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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필립 퍼키스/안목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필립 퍼키스/박태희 옮김/안목


-강의, 사진 그리고 인생의 모든 문제들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는 미국의 사진작가다. 1962년부터 뉴욕의 여러 학교에서 사진을 강의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 게티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과, 뉴욕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그의 한국 제자인 박태희가 번역했다.


신문에서 우연히 필립 퍼키스의 책 소개를 읽고 흥미로워서 읽었다. 사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으니 그의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사진에 대한 강의이기도 하지만, 예술에 대한 태도와 인생을 다룬 것이다.

옮긴 이 박태희의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필립 퍼키스의 언어는 놀라웠다. 평범한 말투에 깊은 철학이 담겨 있어서 울림이 큰 시를 읽고 있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사진에 대해 말을 했지만, 사진은 하나의 예시일 뿐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웬만한 산문작가의 글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깊이가 있어서 아름다웠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있던 그 만의 통찰이 자연스럽게 배여 나온 듯했다.

이 책은 로체스터 대학의 에세이 시간에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는 경험이라고는 스마트폰으로 일상적인 것만을 찍어본 나로서는, 사진에 대한 그의 글은 내가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저 너머의 세계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서 많은 느낌을 받았고 내가 알지 못한 세계에 대해 조금은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서 사진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발견한 듯도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멋진 보물을 주운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유명 작가의 어떤 책은 잔뜩 기대를 하고 읽었지만 그 기대만큼의 실망을 할 때가 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놀라운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당연히 후자에 해당된다. 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책들도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좋은 문장들이 차고 넘쳤지만 몇 개만 추려서 여기에 옮겨본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인식의 세계를 특별한 기술로 전달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기능이라고 말하지 마라. 예술의 독창성이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시를 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산문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앉아 중앙아시아의 양탄자를 바라보면 이 물건이 단지 장식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료하게 다가온다. 내 이성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미와 가치의 세계가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동안 어떤 의미도 캐려 하지 않고, 그저 마음을 열어 둔 채 양탄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언어로는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하고 심오한 무언가가 마음바닥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34쪽~35쪽)



사진은 절대적인 크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적인 크기를 보여줄 뿐이고 미루어 짐작될 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자체의 크기 따윈 없으며 오직 다른 것과 비교해서 어림된다는 사실이다. (46쪽)



한국의 저 소박한 도자기나 낡은 음반에서 지직거리며 들려오는 레스터 영 Lester Young의 재즈 멜로디가 어째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형태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다. 분명, 내 이성만으로는 결코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무언가가 그 순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64쪽)


예술 창작에서 ‘우연’의 요소는 종교에서 말하는 ‘은총’이나 ‘기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우연의 힘으로 예술가는 자기 능력의 제한된 한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할 수 있다.(105쪽)


작품의 정신은 예술가의 내면으로부터 나오고, 창조적 행위는 우리가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슬프고 기쁘고 지치고 죽는 그 모든 과정과 서로 맞물려 이루어진다.(108쪽)



나는 강렬한 사진에서 추상과 묘사 이 둘 사이의 관계는 한 몸 안에 있으며 그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는 일종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듣거나 시를 읽을 때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몸과 마음이 본능적으로 엮여져 감정이란 구조물을 형성하는 것이다.(121쪽)



나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사진을 찍는 것은 내 안의 무언가와 합치되는 바깥의 대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숟가락을 찍는다면, 숟가락에 대한 내 ‘생각’을 찍는 것이지 숟가락 자체를 찍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아이디어’란 내 안에 있는 ‘무엇’이다. 사진은 ‘무엇’을 밖으로 드러낸 것이다.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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