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
저자 제나 히츠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그녀는 이 책으로 댈러스 인문학 연구소가 수여하는 하이엇 상(Hiett Prize in the Humanities)을 받았다.
책 제목이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다. 흥미로운 제목이다. 공부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찬란하다고 하고, 공부는 아주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무용하다고 한다. 일반적인 개념과는 좀 다르게 공부에 대해 접근할 듯해서 궁금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깨달은 바, 배우는 것은 직업이다. 배움은 돈과 지위를 획득하고 기성의 교육 제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배움은 숨겨진 상태로 시작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내면에 품은 생각에서, 독서광들의 조용한 생활에서, 출근길 아침에 몰래 하늘을 바라보는 일에서, 테라스에 앉아 무심히 새들을 관찰하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배움의 숨겨진 삶이야말로 배움의 핵심이자 의미 있는 부분이다. (44쪽)
-저자는 진정한 배움이 숨겨져 있고, 내면의 삶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길러지며, 그러지 않으면 왜곡되거나 한정된 방식으로만 살아남아 인간 일반의 경험에서 대체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굴욕을 모면하기 위해, 사람과 인정과 사회적 출세를 위해 배움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했던 목표는 다시금 우리 안의 문을 열고, 지금껏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욕망과 관심과 경이감을 깨워낸다. 우리가 어떤 활동에 사로잡히는 건 그 활동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욕구는 보통 우리 안의 깊은 곳에 묻혀 있다가 외부의 무언가가 우리를 끌어당기거나 장애물을 부수거나 장벽을 뚫고 들어온 결과로써 표면으로 드러나다.(59쪽)
-우리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배움을 시작하지만, 배움은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욕망, 관심 그리고 경이감을 깨워낸다. 처음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배움을 시작하지만 결국 그런 배움이 우리 내부에 감춰져 있던 욕구를 겉으로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음악, 진지한 대화. 애정을 담아 남을 돌보는 행위는 우리 안의 가장 좋은 부분을 꺼내어놓는다. 이것은 우리가 애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무한한 개인적 성장을 일으키는 동력이다. 여가와 오락의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우리가 선택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간소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오락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로 의미 있는 인생에는 오락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78쪽)
-여가와 오락의 차이는 우리가 선택하는 목적에 따라서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예술, 음악, 봉사행위를 통한 여가 생활은 우리의 개인적 성장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한다.
내면의 삶을 보살필 때 우리는 사회적 안정이나 출세에 대한 염려는 한쪽으로 치워놓는다.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이 가하는 초조한 압박감을 잠시나마 잊는다. 내면을 향하여 물러나는 행위는 공간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내면의 삶을 구성하는 사유와 상상은 숨겨지고, 말해지지 않고, 보이지 않을 수 있다.(100쪽)
세상에서 물러나는 것과 내면을 향하는 것의 조합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여가의 한 형태임을, 즉 일을 넘어서는 존재의 방식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으며, 인생을 완성할 수 있는 유형의 활동이다. (102쪽)
-여가는 일을 넘어선 존재의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가는 그 자체로 가치 있으며, 인생을 완성할 수 있는 활동이다. 이런 점에서 여가는 단순한 오락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 같다.
내면의 삶을 기르는 일에는 사적인 고독과 침묵뿐 아니라 어떠한 대상에 대한 몰두 또한 필요하다. 소설이나 철학책을 읽는 일은 내면의 삶을 북돋우며, 기하학 문제에 흥미를 불태우거나 새들의 삶에 매혹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든 행위가 이러한 의미에서 내면의 삶을 발달시키는 건 아니다.(104쪽)
-내면의 삶을 발달시키는 것에 대한 정의다. 무언가 깊이 몰두하고 그런 활동이 존재의 방식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몰두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이런 행위에 대한 몰두야말로 내면의 삶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몰두하는 모든 행위가 내면의 삶을 발달시키는 것은 아니다.
배움에 대한 사랑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숨겨질 수 있으며, 일반적 경험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인간성의 차원들을 열어준다. 공간과 시간의 구조나 수학적 정리를 이해할 능력, 아름다운 구절과 이미지와 풍경에 대한 감상, 지금 여기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가는 능력, 성찰하고 사유하고 망상을 꿰뚫어 보는 역량, 이 모든 것이 인간성의 광휘를 이룬다. 정신적 탁월성, 즉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인식한 대상을 의식하고, 연구하고, 새로 상상하는 역량이 성장하면서 인간성은 찬란한 빛을 발한다.(155~156쪽)
-이 문단에서 배움이 찬란한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여기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가는 능력, 성찰하고 사유하고 망상을 꿰뚫어 보는 역량, 이 모든 것이 인간성의 광휘를 이룬다’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세상은 알고 보니 우리 마음속에 있었다. 배움에 대한 사랑을 오롯이 찬란하게 실천하려면, 우리는 내면의 전쟁이나 화해를 통해 배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여타의 모든 동기를 정렬시키고 규율을 부여하게끔 해야 한다. 지적인 삶은 금욕주의의 한 형태이자 자신을 일구는 일이라서, 식물을 기를 때 햇빛과 토양과 씨앗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일부를 뿌리째 뽑아내고 말리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된다.(183쪽)
- 우리가 벗어나고 싶어 하던 세상은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 모든 것은 사실 마음이 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일부도 뿌리째 뽑아서 햇빛에 말리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미덕은 단순히 경험 자체를 위한 경험이 아니라 성장, 치유, 이해,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대한 경외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 자체보다 더 심오한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웅장한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나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계속 돌리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 (224쪽)
-경험 그 자체보다 그 경험에서 느끼는 심오한 감정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그 느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는 것과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경험 그 자체보다 경험에서 뭔가 소중한 느낌을 얻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부가 아닐까.
저자는 배움을 찬란하고 무용하다고 했지만, 배움은 찬란하고 유용한 것이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은 동양 고전에서도 중요한 사실로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