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The cost of Living
작가 데버라 리비 (Deborah Levy)는 영국의 극작가, 시인.
2013년 자서전 에세이 시리즈 ‘생활 자서전’living autobiography 3부작의 첫 책으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펴냈다. 2018년에는 둘째 권인 『살림 비용』을 출간해 고든번상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이 두 작품으로 2020년 메디치상 해외 문학 부문 후모에 올랐고, 심사 위원이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페미나상 해외 문학 부문에서 수상했다.
‘생활 자서전’의 두 번째 책인 이 책은, 오십 대에 이른 작가가 이혼한 직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이혼한 후 어떻게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꾸려 가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었다.
작가는 대부분의 결혼한 여자들처럼,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제의 관습에 젖어 유지했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했다.
혼자만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의 난관은 수시로 그녀를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녀는 자유에는 대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씩씩하게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살림 비용 The cost of Living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책 제목이 ‘살림 비용’이 아니라 ‘삶의 비용’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는 이십 여 연간의 결혼 생활을 이렇게 회고한다.
사랑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그 틈새로 밤이 스며든다. 밤은 끝없이 이어진다. 분한 마음과 비난으로 들끓는다. 밤새 이어지는 괴로운 내면의 독백은 해가 떠도 잦아들지 않는다. 나로선 이 점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이토록 내 마음이 ‘그 이’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그 사람에게 가로채였단 사실이, 그건 점령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소, 행복하지 못한 게 어느새 버릇이 되고 있었다. “우표나 새알을 하나씩 모아 수집한 컬렉션처럼······평생에 걸쳐 점차 키워갈 수 있는” 변화하는 것으로 베케트가 설움을 묘사했듯이 말이다.(16~17쪽)
결혼 생활이 끝났음을 깨달은 날, 난 여자처럼 울었다. 살면서 여자처럼 우는 남자를 본 적은 있어도 남자처럼 우는 여자를 본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18쪽)
사랑 없이 사는 건 시간 낭비다. 나는 글쓰기 공화국이자 어린이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아니니까. 그래 난 그와는 다른 정거장(결혼)에서 하차해 역시나 다른 승강장(자녀)으로 이동했다고 봐야했다. 그는 내 뮤즈였지만 나는 명백히 그의 뮤즈가 아니었다.(84쪽)
-그녀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저렸다. 이혼을 했든 안 했든 많은 여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밤중에 외투를 입고 작은 발코니에 나가 글을 쓰다 보면 먼 별들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지난 삶에서 누렸던, 책으로 빼곡한 서재를 별빛 총총한 겨울 밤하늘과 맞바꾼 셈이었다. 그해 나는 영국의 겨울을 처음으로 만끽했다.(28쪽)
새집으로 이사하고 모든 게 예전보다 축소되어 갈 즈음(다육이들만은 예외였다), 내 삶은 반대로 점점 확장됐다. 어려운 시절이었던 만큼 일이라면 들어오는 대로 받았고, 우편함에 청구서가 날아들 때마다 움찔댔다. (36쪽)
-그녀는 이혼 후 현실로 다가온 생활의 어려움을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음은 새로운 각오를 하게 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일러 주었듯 힘과 성공을 남자 몫으로 간주하는 세계에서 여자가 남자를 능가해서는 안 된다. 남자가 여자의 재능에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리고 여자들에 관해 역사적으로 행사해 온 길고 긴 지배의 특권을(현재적인 요소를 첨가해) 수월히 이어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동시에 여자는 자기의 힘을 숨겨야만 남자에게 사랑받는다는 치명적인 메시지를 수용하게 된다. 남자도 여자도 저희가 실은 남자 체면을, 아니나 다를까 가면에 맞게 양태가 달라진 남자의 얼굴을 살리자고 거짓말하고 있음을 안다. 남자의 눈은 언제고 세계에 들통날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가면에 뚫린 구멍 밖을 주시한다.(99~100쪽)
-사실 그대로이긴 하지만 가부장제에 대한 신랄한 분석이다. 그녀는 어렴풋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결혼 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작가는 여자들이 어느 정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솔직하게 밝혔다. 그녀의 결혼 생활을 비로소 끝내고서 말이다.
사실 결혼생활이라는 어항 속에 있으면 바깥세상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항 밖에 있을 때에야 어항 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영화 노아 바움벡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찰리와 니콜의 결혼생활과 이혼을 다룬 영화인데, 니콜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늘 자신의 성취보다 남편 찰리의 성공과 성취를 앞세우고 자신은 늘 뒷전에 서서 남편을 내조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니콜은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며 이혼을 요구한다.
남편은 니콜이 왜 이혼을 원하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의 성취나 성공이 곧 가족의 성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억울해했다. 가족이 공동체이긴 하지만 각 개인의 삶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남자들도 오랫동안 존속해 온 가부장제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남자들도 자발적으로 변해야 한다. 지금 여자들은 변하는데 남자들은 변하지 않거나 변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렸던 권력의 왕관을 벗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여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자기 이름을 지워버린 사회의 서사와 결별할 때, 그가 맹렬한 자기 혐오에, 미칠 것만 같은 고통에, 눈물이 멎지 않는 회한에 빠지리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이런 것이 여자를 위해 마련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이다. 눈물지을 순간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160~161쪽)
-작가는 오래된 사회의 서사와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을 외면하면서 씩씩하게 자신의 두 발로 현실이라는 어둠 속을 통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작가의 ‘삶의 독립 선언서’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삶의 비용으로 만든 글이며 디지털 잉크로 만들어졌다.(161쪽)
-그녀의 삶의 비용은, 스스로 빛나는 그녀만의 왕관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바로 자기 삶의 ‘여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