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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Aug 22. 2020

어느 운동회 날의 이야기

내가 어린이날에 한 일을 묻지 않는 이유



  어느 해 5월, 운동회 날이었다.



  어린이날 맞이 소체육 대회.
  날이 흐리긴 했지만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방과 후 부서 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있었고, 교장 선생님의 기나긴 훈화 말씀이 있었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는 아이가 꼭 한 두 명 있었고, 손등에 3등 도장을 받고 눈물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계주였다. 곡선 레인을 용감하게 직선으로 가로질러 달리는 1학년 주자를 보며 웃음으로 시작한 청백 계주는 엎치락뒤치락 역전에 역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바통 터치의 중요성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인생의 교훈을 남겼다.




흐린 날의 만국기




  그 해 운동회가 내게 조금 특별했던 것은 한 아이와 그 아버지 때문이었다.



  운동회 날에는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기 위해 학교를 찾곤 한다. 보통은 스탠드 위쪽과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서 경기를 지켜보기 마련인데, 유난히 한 아버지가 우리 반 아이, A 바로 옆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A는 아버지의 품에 꿀이라도 숨겨놓은 듯,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고,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조용히 다가가 거리를 두고 관람하기를 부탁드렸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아이가 얼마나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는지 난 알고 있었으니까.


  요즘은 가정환경 조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1년 전에 맡았던 A의 언니를 특수 목적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던 중, A의 가정 상황에 대해 불가피하게 알게 되었다. 평소 무뚝뚝하던 A는 아빠로부터 온 길고 긴 문자를 내게 자랑하곤 했다. 매일 아침 문자로나마 딸에 대한 사랑을 써내려 가던 아빠는 어떠한 이유로 딸과 함께 살 수도, 자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런 아빠가 운동회에 찾아오자 A는 말 그대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 이후로 A를 볼 때면 난 그 날 아빠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이 떠올랐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가득한 그리움. 놓으면 떠날까 한 시도 힘을 빼지 못하는 꽉 잡은 두 손. 평소의 뚱한 표정과 시니컬한 말투는 온 데 간 데 없고, 얼굴에는 애교와 사랑이 넘쳤다. 이 아이가 이렇게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나 싶을 만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몸 전체를 A 쪽으로 돌리고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A를 말없이 한없이 다정하고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두 사람만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버지에게 학부모 관중석 쪽으로 가달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부녀의 행복을 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라도 그 눈빛을 보았다면 둘을 떼어놓지 못했을 것이라고 변명해본다.  


  그렇게 운동회가 끝나고 주말이 되었다. 어린이 날이었던 토요일, 어떤 아이는 부모님과 동물원에, 다른 아이는 낚시터와 놀이동산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A가 떠올랐다. A는 어떤 어린이날을 보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A보다 더 외로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A는 비록 한부모 가정에 있지만 두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고, 어쨌든 부모님 중 한 분과는 같이 살고 있다. 반면에 부모님에게 외면당한 아이들, 같이 살고는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상처를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매년 한 두 명씩 만나온 새터민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떨어져 아이들끼리 모여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우리 반 아이들 중 몇은 내가 모르는 어떤 상황 속에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이 끝나고 다시 만난 화요일, 어린이 날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라고 차마 말할  없을  마음이 애달팠기 때문이다.


  화요일은 마침 어버이날이기도 해서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었다. 편지를 써서 돌돌 말아 꽃다발에 꽂아 넣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조잡하기만 한 중국산 조화가 아이들에게는 예뻐 보였는지 다들 너무나 좋아하며 열심히 만들었다. 그 와중에 두 개를 만든 아이들도 있었는데, A도 그중 하나였다. 종이를 접고, 꽃을 붙이고, 두 개의 편지를 쓴 A는 꽃다발 두 개를 소중히, 정말 소중히 들고 교실 문을 나섰다.



  그 꽃다발은 아버지에게 전해졌을까.
  그 작은 꽃 한 송이를 받아 들고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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