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와 19세기의 불협화음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렇듯 «수기»에서는 욕망, 개성, 자아라는 세계와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흥미로운 점은 양자가 모두 19세기에 완성된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수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근대의 양면성을 설명해 주었는데, 이러한 서술에는 작가의 보기드문 친절함이 깃들어있다.
“예컨대, 나한테 친구가 하나 있는데······이 양반은 무슨 일에 임할 때면 그 즉시, 이성과 진리의 법칙에 따라 정확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청산유수 같은 달변으로 똑똑히 여러분 앞에 늘어놓을 것이다.···(중략)··· 그러곤 정확히 십오 분 뒤에 어떤 돌발적이고 외적인 동기도 없이, 정확히 그의 모든 이득보다 더 강렬한 뭔가 내적인 동기에 따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것, 즉 제 입으로 말했던 것과 완전히 정반대 되는 짓을 할 것이다……미리 말하건대, 이 내 친구란 집합명사 같은 존재이므로 이자 하나만을 탓하기는 왠지 어렵다.” (p.38)
짐작할 수 있듯이, 위에서 말하는 “친구”이자 “집합명사 같은 존재”는 바로 근대이다. 지하생활자는 근대가 “이성과 진리의 법칙”과 더불어 이와 정반대 되는 “강렬한 내적동기”를 원동력 삼아 움직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보다 더 쉬운 예를 통해 근대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해 보자. 본래 겨울바람을 신의 노여움이라 인식하던 인간은 근대에 이르러 ‘물은 0도에서 언다’는 자연법칙을 통해 흐르는 강물이 얼어붙는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법칙의 확대 적용을 통해 점차 이성과 진리의 주체로 거듭났으며, 인간이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힘이 강화될수록 ‘나’와 (신으로 대표되는)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뚜렷해졌다. 세상을 보는 ‘나’만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시각인 ‘자아’가 확립된 것이다. 이에 인간은 과학과 이성을 통해 정복 가능한 자연의 범주를 넓히려고 하는 동시에, 자연법칙에 의해 명료하게 해석될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정복하되 정복당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성이 근대의 양면성을 만들어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지하생활자를 통해 근대의 첨예한 모순을 형상화했다. 지하생활자는 자연법칙, 가령 ‘인간은 배가 부르면 행복해진다’와 같은 보편적 법칙하에 자신의 개성이 종속되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끊임없이 의식의 변주를 일으키는 인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 분만 지나도 성질을 내면서, 이 모든 것이 거짓에 또 거짓이다, 즉 이 모든 참회, 이 모든 감동, 이 모든 갱생의 맹세가 죄다 혐오스럽게 꾸며진 거짓이다, 하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었다...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다 보니 스스로 이런저런 모험담을 고안해 내고 삶 자체를 지어냈던 것이다.” (p.30)
그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의심, 회의, 경멸의 덫에 걸려들면서도 자신이 이성과 진리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고통 속에서 쾌감을 찾는다. 또한 그는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쫓는 존재”로 규정한 “활동가”들과 달리 인간에 대한 쉽고 간단한 정의를 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 되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숫제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심술궂은 인간도, 착한 인간도, 야비한 인간도,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그렇다, 19세기의 현명한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우선적으로 성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면 성격이 있는 인간, 즉 활동가는 우선적으로 꽉 막힌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십 년 묵은 나의 소신이다.” (p.12)
이처럼 지하생활자는 근대의 양대 요소가 충돌하는 양상을 자아의 분열을 통해 보여준 인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하생활자의 근대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자아로부터 근대문명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이다. 그는 평화, 자유와 같은 인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근대문명이 고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명이 대체 우리 내부의 무엇을 부드럽게 해 준단 말인가? 문명은 오직 인간 내부의 감각들의 다면성을 개발해 줄 뿐······그뿐, 더 이상 단연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다면성이 발전함으로써 결국 인간은 아마 더욱더 피 속에서 쾌감을 찾게 될 것이다.···(중략)···적어도, 인간이 이 문명 덕분에 더 피에 굶주리게 된 건 아닐지라도 분명히 예전보다는 더 고약하고 더러운 꼴로 피에 굶주리게 됐다. 예전에는 유혈에서 정의를 보았기에 평온한 양심으로, 마땅히 처단해야 될 자를 살육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유혈을 더러운 짓으로 여길지언정 어쨌거나 이 더러운 짓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정도도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pp.40-41)
여기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근대문명의 탄생 이전에는 폭력이 강하거나 선한 자가 신의 이름으로 약하거나 악한 자를 정복하는 방식으로, 즉 일원화된 방식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근대문명이 도래하는 과정에서 폭력은 “다면”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 독자적인 자아의 영역을 지키려는 개개인이 모여 모종의 고유성을 추구하는 집단(민족, 국민국가 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인류의 최대 이익을 위해 설계된 근대문명의 건설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총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으며, 폭력이 더욱 다원화된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장이다. 20세기의 세계대전과 끔찍한 살육전을 떠올려볼때, 그가 매우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수기»는 단순히 한 인간의 심리적 고통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이는 근대가 완성된 19세기라는 특수한 시기에 한 지식인이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첨예한 모순에 대한 기록이다.
마주 선 거울 사이에 서면 끝없는 분열의 형상이 펼쳐진다. ‘자아’라는 이름과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거울 사이에 선 지하생활자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21세기라는 불행한 세기에 지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만족감을 맛보며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도스토예프스키의 날카로운 펜촉은 지금 우리를 향하고 있다.
페이지 표기는 “지하로부터의 수기”(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 2010)를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