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의 계보학 사건은 출판계에 역대급 불황이 찾아온 요즈음 인문교양서가 출간 일주일 만에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 2만점을 넘기며 폭발적인
관심을 끈 사건이다.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한마디로 말해 인터넷 공간에서 재생산되는 ‘인터넷 밈’이라는 이름의 복제품이 하나의 놀이문화이자 예술작품으로서 갖는 미학적,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기획 의도와 목차를 보고 설레는 마음에 펀딩을 했는데, 읽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아서 놀랐다.
특히 인터넷 밈과 혐오의 상관관계에 대한 균형 잡힌 고찰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도 인터넷 밈의 표층에 혐오와 차별의 논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극우의 정서가 하위문화의 틈새에 스며들도록 방치한 성긴 사회구조에 대한 통찰이지 밈 자체를 금기시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밈은 탈맥락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야만 하는 운명을 지녔으므로 그 어떤 콘텐츠보다 빠른 자정 작용을 거칠 수 있다. 때문에 밈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대신, ‘밈화’가 일종의 대안문화이자 예술적 행위로서 갖는 가능성 되새기고 이를 최대한 살릴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주장은 다음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인터넷 밈이 사유의 부재로 우익에 의해 전유될 것이라는 공포는 가득한데, 왜 반대로 시민 사회가 다 함께 인터넷 밈을 전유할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을까? 유머는 타인과 나 사이의 대화이자 미메시스다. 추천 수와 좋아요로 내 자존감과 지갑을 채우려는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웃기겠다는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유머를 이기지 못한다. 똑같은 합성 소스를 쓰더라도 나와 성향이 다른 타인, 즉 타자를 웃기려고 할수록 나와 그 타자 사이의 접점을 사유하게 된다. 그 접점을 사유하고 거기에 합성 소스를 배치하는 순간 합성 소스에 깃든 독성이 사라진다...유머는 의미의 고정이 아니라 의미의 표류와 거기서 생기는 오해에서부터 나온다. 특정 단어의 의미가 여러 맥락 사이에서 표류하면서 의미의 확정이 지연된다는 것을 긍정하는 순간에 우리는 그 단어를 전용하고 재창조할 수 있다. 재창조의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pp.220-221
저자의 위와 같은 의견에 십분 동의하기에, 이에 대해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다. 오늘은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단편적 감상과 의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저자는 2, 3장에서 다양한 형식의 ‘합성 소스’가 혼성모방과 전용 등의 과정을 거쳐 ‘밈화’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저자의 논리를 좇으며 ‘도대체 무엇이 밈화를 추동하는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밈은 살아남기 위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무엇이 이 수고스럽고 복잡한 창작 행위를 가능케 하는 걸까?
벤야민의 개념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듭된 복제로 제의 가치가 실종된 오늘날, ‘지금-여기’의 가치, 즉 일회적 현존재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욕구가 이와 충돌하는 기술적 조건(첨단의 복제기술)과 맞물려 탈맥락화된 복제품(인터넷 밈)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 봤다.
인터넷 밈은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팬이 계속해서 유입되어야 하고, 윤리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자정 작용도 이루어져야 하며, 특정한 정치적, 상업적 목적에 쓰일 수 없을 정도로 무법적인 이미지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복제 시 이전의 밈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는 것이다. 즉, 복제는 하되 모방은 하지 않는 것, 미메시스가 그 자체로 새로운 창작임을 보여주는 게 인터넷 밈 생산의 철칙이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밈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장수하는 밈도 많지만, 장수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탄생해야만 한다. 찰나의 순간 대중과 공명하는 인터넷 밈은 벤야민이 말한 “지금-여기”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복제와 모방을 촉진하는 기술적 조건은 계속해서 유지, 발전되고 있다. 이로 인해 모든 게 너무 쉽게 복제된다. 아우라의 파괴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쾌감을 안겨주지 않는다. 아우라를 재건하려는 욕망과 현대의 기술적 조건이 만나 탄생한 탈맥락화된, 불연속적인 복제 이미지를 ‘밈’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위와 같이 모순적인 양태의 소비와 생산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이 바로 아이돌 산업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것이 너무 가까워지고 복제되기 쉬워지자 멀리 있는 것, 복제 불가능한 것을 숭배하면서 첨단의 복제 기술을 사용하는 모순이 바로 인간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아이돌 산업에서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덕후는 최애가 뿜어내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 ‘오프’(콘서트, 팬미팅 등)에 목을 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팬덤 내부에서 끝없이 밈을 생산하며 “원본을 훼손하고 복제하며 연구하는 데 쾌감을 느낀다.”(p.135) 저자는 전자의 성격을 가지는 소비자를 마니아로, 후자의 성격을 가지는 소비자를 오타쿠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덕후는 마니아일까, 오타쿠일까? 아이돌 팬덤이 인터넷 밈의 생산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걸 고려할 때 꼭 되짚어 봐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가 기회가 닿아서 작가분께 직접 질문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여하튼 일독을 권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네요. 좋은 책이 잘 팔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