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나오라

태민 VEIL 콘서트 VCR 분석

by 올가의 다락방

올해 9월 시작된 태민의 Veil 투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무대 위의 퍼포먼스만큼이나 강렬했던 것은 콘서트의 흐름을 관통하던 세 편의 VCR이었다. 필자는 이 VCR들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하나의 서사를 구성했는지, 그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coco_ruu1 님의 영상을 캡쳐했습니다.

세 번째 VCR에 대한 분석으로 글을 열어보고 싶다. 태민 베일콘의 마지막 VCR은 하나의 “좁은 방”에서 시작된다. 성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금욕적이고 종교적인 상징들로 가득 찬 그 방은 필자로 하여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떠올리게 했다. (주지하듯이, <좁은 문>은 마태복음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에서 따온 제목이다.) VCR 속 공간은 지드가 말한 “좁은 문”처럼, 도덕과 순결의 이름으로 욕망을 가두는 내면의 감옥이자, 외부 세계와 단절된 폐쇄적 자아의 공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tokengreys 님의 글을 캡쳐했습니다.

그 좁은 방에서 그는 한 편의 글을 읽는다. 그 글귀들은 아름다운 말 뒤에는 썩은 영혼이 숨겨져 있으며, 얇은 껍질로는 부패를 감출 수 없다고 말한다. 눈부신 빛처럼 번쩍이는 위선은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결국 시간은 모든 가면을 벗겨낸다는 것이다.

@inexistent_one 님 영상을 캡쳐했습니다.

이 글귀는 첫 번째 VCR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상에 등장하는 것은 썩은 사과에 들러붙는 개미떼, 뼛가루로 만들어졌다가 다시 불 타 사라지는 곰인형, 그리고 베일을 쓴 태민이다. “우리가 태어난,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이 세상은 부패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구도 속의 공포와 수치심은 우리의 탄생과 죽음에 동시에 관련되어 있었다.”(*조르주 바타유, 조한경 역, <에로티즘>, 민음사)라는 조르주 바타유의 문장이 보여주듯, 죽음과 탄생은 깊게 결부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죽기 위해 태어나고, 죽어서 다른 존재의 탄생의 기반이 된다.


한편, 기독교는 그 자연스러운 죽음과 탄생의 연쇄에 ‘원죄’라는 단절적 요소를 심어놓았다. 우리는 ’원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신을 믿고 천국에 가야하는데, 이때 내세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은 몸과 분리된 영혼뿐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인식으로 인해 몸, 그리고 몸과 결부된 욕망은 수치와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베일‘은 그러한 몸과 몸을 향한 관능적 시선을 가리고 차단하기 위한 도구로, 그 자체로 금기를 상징한다. 첫 번째 VCR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금기의 보편성이다. 세 번째 VCR에 등장하는 글은 그 금기의 위선을 폭로한다. 모든 존재는 썩은 과일처럼 부패하게 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말과 빛으로 그 죽음과 생명의 연쇄를 가리는 것은 위선이라는 것이다.

@coco_ruu1 님 영상을 캡쳐했습니다

다시 세 번째 VCR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태민은 금기의 위선을 고발하는 글을 읽은 뒤 창문을 바라본다. 방 안으로 들어온 빛은 그의 얼굴 위로 창살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굳게 닫힌 창과 창살, 그리고 그 그림자는 신의 질서와 금기, 인간을 옭아매는 원죄의 흔적처럼 보인다. 그는 눈을 감고 아직 금기를 내면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어두운 숲속을 헤매다 바다를 만나 뛰노는 아이는 죽음 이후를 상상할 수 없어서 불안하지만, 내세에 사로잡혀 있아 자유로운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coco_ruu1 님 영상을 캡쳐했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린 태민은 이내 결심한 듯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방 밖은 환하다. 이때 태민을 비추는 빛은 곧고 좁은 영혼의 순례길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아니다. 그것은 내세가 아닌,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자만을 흠뻑 적시는 강렬하고도 따스한 햇살이다. <좁은 문>의 알리사가 끝내 ‘좁은 문’에 갇혀버린 것과 달리, 태민은 스스로 문을 열고 탈출한 것이다. 이는 곧 베일을 벗고 금기 너머로 향하는 몸짓이라 할 수 있다.

@nanotaem 님의 영상을 캡쳐했습니다.

이 과정은 일종의 ‘변신(metamorph)’이다. ‘좁은 방’으로 상징되는 자기완결적 자아를 벗어던지려는 시도. 악령의 봉인에서 풀려난 태민이 거미 같은 형체로 거듭나는 두 번째 VCR은 그러한 변신을 시각화한다. 필자는 이 VCR을 보며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그레고르가 근대적 이성의 상징인 눈(인간)을 잃고, 동물적 감각을 상징하는 여러 다리(벌레)를 얻는 것은 실은 어떤 존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과 유사하다. 온전하고 자기완결적인 자아에 대한 환상을 깨고 분열적인 감각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의 변신(Metamorphosis)이다.

@coco_ruu1 님 영상을 캡쳐했습니다.

그럼 태민이 지금까지 머물고 있던 알, 혹은 좁은 방은 무엇이었을까? 그곳은 ‘환상’과 ‘금기’의 공간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견디지 못한 인간이 만든 내세에 대한 환상과 그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금기‘말이다. 이러한 보편적 금기는 태민의 삶 속에서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재현되었다. 문명과 이성을 지키기 위해 성별이분법과 성도덕을 만들고, 스스로 그 금기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들은 늘 아슬아슬한 것들을 원한다. 그들은 누군가가 나 대신 그 금기를 넘어주길 바라면서도, 그 금을 살짝이라도 밟는 사람이 있으면 온 세상이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떤다. 그런 종류의 금기 속에 머물며 경외와 경멸의 시선을 동시에 받아온 태민은, 이제 그 금기의 위선을 폭로하며 알, 혹은 ‘좁은 방’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선적인 금기를 지키며 누군가의 환상 속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다.


종합하자면, 베일콘의 VCR은 하나의 연속된 서사를 그린다. 죽음과 재생의 연쇄, 그것이 낳는 공포라는 원죄 속에 묶인 인간이 강요된 위선과 거짓의 가면을 벗고, 좁은 문의 금기를 넘어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세상 밖에 나오는 서사. 이것은 매우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인 서사다. VEIL 콘서트는 그 보편적이고도 개별적인 금기의 서사를 보여주는 콘서트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좁은 문을 열고 나온 태민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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