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를 읽고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는 내가 근래 본 책 중 가장 ‘진정성’ 있는 저작이다. 총명하고 유망했던 한 시인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 저자는 자살의 역사와 더불어 자살의 동기를 사회적, 이론적, 감정적 차원에서 다룬다. “자살을 왜 하느냐고? 왜 하지 않는단 말인가?”라는 말을 남긴 어떤 유서처럼, 그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자살을 젊은이의 치기, 혹은 통계적 현상으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에 저항한다. 그가 자살을 그저 해서는 안 될 기행으로 치부하는 걸 거부한 이유는, 자살에 대한 그러한 관점이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진 속) 이 페이지에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자살을 억제하는 기독교라는 방벽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이다. 무절제한 죽음에 대항해 스토아 철학이 내세우는 덕목—이성, 절제, 자기 통제, 고통의 인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함께 지구 밖으로 완전히 쓸려 나갔다. 프로이트마저 만년에 ‘죽음 본능’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성욕이라는 이름의 자기 보존의 욕구가 삶을 지배한다는 자기 논리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그 또한 문명의 참혹한 붕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그 무엇도 자살을 방해할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결국 남게 되는 건 순환론적 논법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즉, 생 그 자체만이 자살을 반대하는 최후의 논거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어떠한 철학적 가설도, 도덕적 정언명령도 덧붙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문학 비평가답게 자신이 지금까지 문학에서 건져 올린 미덕을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그는 소박하지만 생생한 문장들을 꺼내놓으며 왜 ‘삶이 죽음에 대항할 논거가 되는지’ 직접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잠시 손을 멈추고 살펴보자. 그대의 가슴속에는 심장이 뛰고, 창밖의 수목들은 신록의 잎사귀로 무성하며, 제비 한 마리 그 위로 바쁘게 날아내린다. 햇살은 뛰놀고, 사람들은 각자 할 일로 바쁘다. 아마 이것이 “살아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아가 얻는 나르시시즘적 만족”이라고 프로이트가 말했을 때 의미했던 바일 것이다.” p.224
그는 이 대목에서 시종일관 유지하던 건조하고 무심한 태도를 버리고 절박한 자세를 취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그 누구보다 자살자와 자살 기도자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자살의 연구』는 자살을 어떤 문화적 풍조나 사회학적 현상의 징후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한 인간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 ‘진짜 원인’, 그 복잡한 내막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단언컨대, 저자의 이러한 진정성은 분명 이 책을 집어든 여러 사람의 목숨을 살렸을 것이다.
살아갈 이유는 없는데, 죽어야 할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집요하고 절박하지만, 그 집요함과 절박함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 저자의 사려 깊은 태도에 위로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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