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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몸, 사회를 잇는 연결고리, 자아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더퀘스트, 2023)을 읽고

by 올가의 다락방

작년부터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다니는 책이 있다. 바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더퀘스트, 2023.)이다.


자아란 무엇일까? 우리의 마음, 기억, 신체 그리고 타인과 맺는 관계 중 무엇이 자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까?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읽은 책들 중 Top10에 들 정도로 좋았다.

1.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코타르 증후군 환자,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환자, 한쪽 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믿는 BIID 환자, 조현병 환자 등 이 겪는 병리적 증상을 통해 ‘자아’를 철학적, 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책이다. 자아의 구성 요소라 여겨지는 것들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추적함으로써, 자아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여러 인터뷰이의 서사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식의 구성도 매우 흥미롭고, 문장과 번역도 우아하다.

2. 나는 특히 자아라는 것의 역설적 작동 방식이 재밌게 느껴졌다. 가령, 우리 몸 내외부의 감각신호를 결합해 신체적 자아를 느끼게 해주는 뇌의 핵심 영역이 섬엽인데, 이게 활성화될수록 자기 인식이 강해지는 동시에 세상과 나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고양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주체로서의 자아가 하나의 ‘대상’으로서 주의를 받게 될 때, 자신이 육체와 감각의 주체라는 느낌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주목할만하다. 자기 자신에게 과도하게 주의가 집중될 때 역설적으로 자아는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건 그런 종류의 역설이다.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3. 자아의 윤곽을 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타인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해 인식하는 능력은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과 함께 발달하며, 양자는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인간이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 위해 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즉, 인간은 스스로를 타자화해야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두 가지 능력--자기 자신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과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이 서로에게 결합할 수 있도록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 신체적 자아에 대한 감각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물적인 한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이러한 감각을 얻을 수 있다. 즉, 신체적 자아에 대한 감각은 곧 타자와 나의 물리적 경계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즉, 타인과 나의 (물리적) 경계를 인지할 때,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타인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나와 타자를 가로지르는 경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타인에 ‘나’를 대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고비와 인간관계의 질곡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철학적 교훈이 뇌과학적으로도 뒷받침될 수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4. 가장 좋은 건 이 책의 균형 잡힌 관점이다. 얼마 전에 과학 교양서에 전제되어 있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런 편향적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뇌과학은 자아를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단단한 실체로 보는 대신 경험의 흐름, 기억의 구성, 지각의 일시적 패턴으로 보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역사관과 조응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존재 자체로 서양 철학을 상대화하는 학문 분과라고 해야 하나? 더 훌륭한 건 이 책이 신체 내외부의 감각을 통합하는 신경망으로서 뇌가 하는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생물학적 환원론으로는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살아 있는 인간에 관한 한, 뇌, 몸, 마음, 자아, 사회는 모두 분리될 수 없다.” 뇌와 몸, 사회가 맺는 불가분의 관계와 자아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일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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