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책』을 읽으며 지난 광장을 돌아보다
요즘 남북전쟁부터 냉전의 종식에 이르기까지 책이 전쟁에서 수행한 역할을 추적한 『전쟁과 책』(아르테, 2025)이라는 저작을 읽고 있다. 『전쟁과 책』에서 저자는 책이 전쟁 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특정한 순간에 특정 텍스트의 영향으로 대중의 여론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p.90)하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저자가 예시로 든 것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남북전쟁의 상관관계다. 많은 사람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노예제 폐지 여론을 폭발적으로 키움으로써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군을 전쟁으로 이끈 강력한 대의는 비인간적인 노예제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미합중국과 공화제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불티나게 팔린 영국에서는 의외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북부가 아닌 남부를 지지했다. 북군이 남부로 통하는 면화 접근 루트를 차단하여 영국이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시 해외에서 이 책이 노예제의 잔인함에 대한 폭로가 아니라, 유럽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미국의 위선에 대한 폭로로 읽혔다고 주장한다.
맞다. 저자의 말처럼 판매고와 영향력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책은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읽힌다.
하지만 나는 특정 텍스트가 특정한 순간에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지난 광장에서 발언 아카이빙 작업을 하면서 『소년이 온다』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의 시민들은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지 않았더라도, 아니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지 않았더라도 계엄과 내란에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가 긴 투쟁의 여로에 선 시민들에게 어떤 정치적 언어와 명분을 제공해 줬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남태령, 한강진 등 투쟁의 주요 변곡점에서 추위에 떨던 시민들은 밤새 발언을 이어 나가며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본인 또한 시민들의 생생한 발언 덕분에 3박 4일, 1박 2일 철야를 버틸 수 있었다.) 발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밤새워 기다리던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년이 온다』의 언어를 소환했다. 발언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오늘날의 투쟁이 4.3, 4.19, 5.18 항쟁의 계보 위에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이는 ‘원자화’되고, ‘파편화’되었으며, ‘거대 담론을 상실’했다고 여겨지는 (혹은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시민들에게 ‘연대’를 위한 강력한 정치적 명분을 만들어줬다. 윤석열이 전쟁까지 획책했다는 걸 고려했을 때, 전쟁과 책의 상관관계는 더욱 확실해진다. 책은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전쟁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12·3 내란 1주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내란이라는 역사적 국면에서 책이 수행한 역할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책이 낡고 무용한 매체라는 오래된 담론에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을 갖게 되었다. 이를 기억하며, 책은 무엇을 할 수있는지, 아니 무엇을 하는 책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