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네 베르겐그륀의 <순결>을 읽고
*본 글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르겐그륀의 <순결>이라는 단편은 귀족 집안의 영애인 마가레트 캄펠이 술에 취해 자신을 강간하려던 한 청년을 단도로 찔러 죽이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재판부는 이 연약한 여성은 그저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무죄 석방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으나, 캄펠은 자신의 고의성을 자백하고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수녀 생활을 하며 점차 살인을 후회하게 되고, 끝내는 자신을 범하려 했던 청년을 사랑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악명 높은 러시아군이 강 건너편까지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회개할 기회를 꿈꾸고 있던 마가레트는 마치 자신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처럼 다른 수녀들을 대피시키고 수녀원을 지키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듯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위협적인 남성이 등장한다.
나는 이 작품의 결말을 읽고 당혹감과 충격, 그리고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아마도 그건 마가레트의 목이 잘려 나간 뒤, 피에 젖은 십자가를 보면서 러시아인이 느꼈을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자신이 미처 돌려놓지 못한, 그래서 자신의 죄를 목격한 성상이 있을까 봐 방을 헤집고 다녔을 러시아인처럼, 나는 앞부분으로 돌아가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지금 마력을 뿜어내는 수녀원장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복도를 비틀거리며 빠르게 지나쳤을 러시아인처럼, 신속하게 작품의 여운에서 벗어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을 범하려던 남자를 죽인 마가레트가 자신을 범하려던 남자에 의해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그녀 스스로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다. 그녀는 오만하지만, 순진한 구석이 있고, 신이 행하는 신비를 믿으며, 어딘가 자신의 남동생을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인의 속을 간파하고, 그의 팔로 자신의 희고 가녀린 목을 내리쳤다. 그녀는 왜 그런 끔찍한 선택을 내린 걸까?
나는 그녀가 자신이 죽인 청년과 재결합하는 동시에, 순결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녀는 자신을 범하려던 남성을 죽인 뒤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수녀원에 들어왔다. 수도 생활을 하며 자신이 죽인 남성을 계속 떠올리다가 끝내 그를 사랑하게 된 마가레트는 순결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으면서도, 자기 삶에 정열과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을 느낀다. 저자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반쪽짜리 삶을 살고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달빛에 반짝이는 눈은 깨끗하고 순수한 흰색으로, 마가레트에게는 마치 자신의 맑고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달과 눈의 순결한 느낌은 아마 순수할는지는 모르지만, 차갑고 굳어져 있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삶은 태양과 정열적으로 빛나는 여름 별자리에 의해 되살아나며 찬미 받는 것이다.” p.356
마가레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열망은 캄펠 가문의 문장에 대한 그녀의 해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자기 가문의 문장에서 깨끗하고 순결한 구름을 뚫고 “싱싱하고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금빛 꽃”이 내려오는 광경을 보며, 속죄의 의지와 함께 “미지의 무섭고 달콤한 어떤 것에 대한 기대”(p.357)를 느낀다. 이는 이미 그녀의 내면에서 죄의식과 욕망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문제는 그 혼종적 감정이 이편이 아니라, 저편에 있는 존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편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에 전쟁 중에도 끝까지 수녀원을 지킨 마가레트에게는 곧 “불그스레하게 노란빛”의 머리칼을 가진 한 러시아인 남성이 다가온다. 투구로도 가릴 수 없는 그의 아름다운 머리칼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사람이 바로 캄펠 가문의 문장 속 금빛 꽃이라는 걸 깨달았다. 희고 깨끗하지만, 차갑게 죽어있는 캄펠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금빛 꽃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속해서 긴장감이 흐른다. 결국 마가레트에게 욕정을 품은 러시아인은 그녀를 궁지로 몰아가고, 마가레트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남자의 손길을 느낀다. 그것은 그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강하고 명백한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은 속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단지 자연의 뜻에 따라 현세의 부족함을 메꿔가면 족할 것”(p.364)이라는 생각. 그녀는 처음으로 속죄해야 한다는 강박과 죄의식으로부터 분리된 순수한 욕망을 느껴본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설정 자체가 굉장히 反여성적이라 느낀다.)
하지만 그건 잠시 번뜩이는 섬광 같은 것이었을 뿐, 그녀는 이내 “올바른 말과 올바른 태도”(p.364)의 세계로 돌아온다. 순결이라는 이상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아래 죄의식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깨달은 그녀는 빠르게 순결을 지키고, 욕망을 채우는 동시에 속죄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녀의 죄의식과 욕망은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금빛의 별 모양을 한 꽃”을 닮은 칼날이 자신을 향하게끔 한다. 마가레트가 죽음을 기다리며 “영원한 순결”을 반복해서 되뇐 것은 일종의 방어 기제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게 순결을 향한 이상이 아니라, 죄의식의 탈을 쓴 욕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마가레트의 죽음은 일견 맹목적인 신념이 낳은 비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서는 매우 합리적이고 정교한 판단이 내려지고 있었다. 비극적인 것은 맹목적인 신념 그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인 자기 성찰의 결과 택할 수 있는 게 죽음뿐이었던 마가레트의 삶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