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그리고 유령과의 소통 가능성에 대하여
그레이스 M. 조의 『유령 연구』가 초세대적으로 배회하는 ‘유령’이라는 개념을 통해 미군 기지촌 여성과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추적한 연구서라면, 같은 저자가 쓴 『전쟁 같은 맛』은 그 유령의 일원인 어머니 ‘군자’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린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다 보니 좀 더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 같은 맛』의 문제의식이 전작에 비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저자의 문제의식은 더 날카로워졌다. 저자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엄마는 조현병을 앓지 않아도 됐다.”
그렇다. 이 책은 어머니의 광기 이면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한 어린 저자가 미국과 한국이 맺은 폭력적 관계, 어머니의 양공주로서의 삶, 이민 경험이 남긴 상처 등 조현병 발병에 영향을 주었을 변수 하나하나를 파고들며 연구자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어머니가 조현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1980년대에 우세했던 건 정신질환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이다. 당시에는 정신질환에 관한 연구가 남성을 표준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에도 조현병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주로 발병한다는 정보가 가장 널리 퍼져있으나, 이는 남성을 기준으로 한 정보이다. 실제로 여성의 경우 25세 이상일 때 증세가 한 번 나타난 뒤, 45세부터 완경기쯤에 두 번째 발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1차 발병 이후 20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환자로 취급되었다.
어머니 ‘군자’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조현병이 ‘사회적’인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병이라는 게 정설이 되었다. T. M. 루어먼의 《우리의 가장 문제적인 광기: 여러 문화권의 조현병 사례 연구》에 따르면, 1) 유년기에 겪은 사회적 역경, 2)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3) 신체적 혹은 성적 트라우마, 4) 이민 경험, 5) 유색인이 백인 거주 지역에 사는 것 등이 조현병 발병과 관련된 주된 사회적 위험 요인이라고 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위에서 말한 모든 사회적 위험 요인을 품고 살았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령, 조현병의 주요 증상 중 하나는 주변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모함에 빠뜨리려 한다는 피해망상이다. ‘군자’ 또한 마을 사람들, 위싱턴주 주지사,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신을 흉보고 괴롭힌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 그 망상의 내용은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지만, 잘 들여다보면 어떤 경험적 근거도 가지지 않는 건 아니다. ‘군자’는 워싱턴주 셔헤일리스에 정착한 최초의 아시아인으로 여러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1997년까지 전체 인구 5,700여 명 중 한인이 단 세 명일 정도로 이민자가 없었던 백인 동네 셔헤일리스에서 ‘군자’는 늘 눈에 띄었다. 그녀는 동화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으나,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미치기 전부터 미친 것 같다는 소문을 달고 다녔다.
이렇듯 조현병은 생물학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정신질환인 동시에 역사적,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위태로운 사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현병 당사자가 놓여있는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고, 그의 행동 속에서 당사자 나름의 의도나 논리를 밝히려는 시도 없이는 소통의 실마리를 발견하기 어렵다. 저자는 요리와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잠들어 있던 젊은 어머니의 영혼과 소통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이는 ‘음식’이 특정 생활양식을 대변하는 문화적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감각적 매개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는 『전쟁 같은 맛』이 던지는 가장 큰 화두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언어가 가장 효율적인 소통 창구라는 이유로,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장애인, 신경다양인을 침묵의 방에 가둬두었다. 이 중에서는 ‘군자’ 어머니처럼 역사적, 사회적 트라우마나 젠더적, 인종적 위계 속에서 얻은 상처로 입을 다물게 된 이들도 많다. 『전쟁 같은 맛』은 역사와 사회에서 유령 취급받는 주체들과의 ’ 소통‘이라는 화두를 다룬다는 점에서 어머니께 헌정하는 ‘회고록’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유령 연구』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품은 ‘유령’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면, 『전쟁 같은 맛』은 한 발 더 나아가 그 유령과의 소통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