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돌처럼 단단하게!

이라영 작가의 《쇳돌》 강의를 듣고

by 올가의 다락방

1. 오늘 열린 《쇳돌》 강의는 문학 작품과 현실을 오가며 광업의 역사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문학을 주된 사료 중 하나로 쓴 작가님은 여러 광산문학 작품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중 계용묵의 <인두지주>(1928)라는 작품이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에 집필된 <인두지주>는 광산에서 다리를 잃은 노동자가 서커스를 하듯이 거미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작가님이 짚어주셨듯이, 해당 작품은 산재를 입고 장애를 갖게 된 노동자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겪는 억압을 다룬다는 점에서 굉장히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작중에서 노동자가 ‘거미’로 전시되는 공간이 ‘박람회장’이라는 사실도 매우 인상 깊었다. 박람회라는 공간이 그려진다는 건, 억압의 근저에 ‘근대성’과 ‘제국주의’가 있다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이미 그런 작품이 쓰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은 자연스럽게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기영의 <광산촌>

2. 이기영의 <광산촌>(1944)에 대한 이라영 작가님의 비판도 인상 깊었다. 해당 작품은 노동을 긍정하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산업 전사의 역할까지 강조하는데, 이는 당대 사회주의자들의 인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당대의 진보 지식인들은 ‘노동’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라영 작가님은 오늘날의 진보 진영이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고 말씀하셨다. 소련의 중앙아시아 개발을 공부한 나에게는 그러한 지적이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사료에서 가장 흔히 접한 게 인간의 자연 극복 서사였기 때문이다.


3. 강의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석회석 광산에서 작가님이 촬영한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에는 300여 개의 광산이 남아있다고 한다(그중 1/3이 석회석 광산). 불현듯 커피믹스를 먹으며 버텼다는 봉화 광산 생존자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생존자분이 보여준 희망 덕분에 여러 광산에 ‘생존용품’이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광맥을 따라 희망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다가도, 노동자가 온몸으로 생존 가능성을 입증해야만 희망이 허락되는 현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반대말이 희망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여전히 주 6일제의 시간을 사는 그들은 오늘도 지하 400m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쇳돌》은 그들을 유령 취급하는 세상을 고발하는 책이며, 나는 그 세상의 일부다. 오늘 강연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생생히 느끼게 해 줬다.

작가님은 사인과 함께 “쇳돌처럼 단단하게!”라는 문구를 적어주셨다. 집에 오는 길에 그 문구를 들여다보며 “쇳돌처럼 단단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쇳돌》은 아주 좋은 모범이 되어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은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오래오래 읽힐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