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어크로스, 2026)를 읽고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는 작가가 30여 년 전에 목격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화산학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몬트세랫에 간 저자는 취재를 위해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된 플리머스로 향했다. 놀랍게도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화산재로 뒤덮인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전보다 더 큰 규모의 화산 폭발이 일어났는데, 이때 저자 앞에 도무지 납득 불가능한 광경이 펼쳐진다. 주민들을 섬 북쪽에 안전한 거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플리머스에 남고자 했다. 저자는 구조대의 손길을 뿌리치는 사람들은 보며 큰 의구심을 품게 된다. 왜 저들은 죽거나 다칠 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걸까?
한참 동안 이 사건의 원인을 추적한 저자는 지구가 곧 거대한 플리머스라는 결론을 내린다. 기후 변화와 AI, 고령화 등으로 인해 문명 전체는 붕괴할 위기에 처했으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변화를 거부하고 같은 생활 방식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플리머스의 주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와 포퓰리즘적인 정치가 위기를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지금의 답보 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 사태의 근저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인간의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류가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원인을 외부가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그것도 뇌과학적인 관점으로 고찰한다는 점에서, 누구도 쉽게 내밀지 못한,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던진다. 사실 위기의 원인을 오랜 진화 끝에 만들어진 본능으로 설정하는 건 비판의 여지를 크게 열어두는 주장이다. 이는 자칫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의 근거가 되거나, 체제와 구조의 책임을 경감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사실 도입부에서는 저자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생물학적 환원론의 힘을 빌리는 대신 뇌와 사회, 역사가 만나는 지점을 탐색하려고 한다는 게 점점 실감 나면서 경계심을 풀었다.
저자가 말하는 ‘변화를 방해하는 일곱 가지 착각’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났다’는 착각이었다. 동구권의 붕괴 이후, 사람들은 모두 ‘탈이념’을 외치며 인간은 더 이상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히지 않는 유연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지금, 이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케임브리지대학의 신경과학자 레오즈 즈미그로드가 2010년대에 진행한 ‘이데올로기 테스트’이다. 그녀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정치와는 무관해 보이는 사고의 유연성과 관련한 테스트를 진행한 뒤,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당시 (규칙이 자주 변동되는) 카드 게임과 창의력 검사 등 여러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놀랍게도 참가자들이 실험에서 보이는 태도는 그들의 정치 성향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가령, 자주 바뀌는 카드 게임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개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이었으며, 강력한 권위에 호감을 느꼈다. 반면 좌파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연상테스트에서 우파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나 위기가 고조될수록, 인간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세계관 속에 머무르면서 뇌를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한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고 각국이 군비 경쟁에 나서고 있는 오늘날, 인류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양극화되고 있다. 이는 자신을 지키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에 따른 현상이지만, 이러한 양극화가 지속될수록 인류의 집단적인 생존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은 후반부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인간의 모순적인 태도를 바꿀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사실 뇌과학 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결론이다. 문제의 원인이 신경학적인 측면에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의료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그럼에도 역사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에 관해 설명하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소수의 엘리트나 전문가가 아닌, 우리 자신이란 걸 강조한다.
사실 나는 그 방안이 다소 추상적이라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거듭 말했듯이, 나는 저자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기후 변화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잇속만 챙기려고 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처럼, 어쩌면 우리도 거시적인 위기의 책임을 모두 외부로 떠넘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쩍도 하지 않는 구조와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집단적인 저항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 자신의 본능에 저항해야 한다. 이 책은 포스트-구조주의의 주체 담론이나 정신분석학으로 확장 가능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급진성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