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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사천삼백구십한번째 어른 날

2020.08.21



늦은 퇴근 길에 만난 삼색털 고양이.


어린 몸집에 얼핏 봐도 배가 불러있었다.


밥을 줄터이니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했더니


처음 보는 얼굴일텐데도 이내 알아듣고는


가던 방향을 돌아 나에게로 온다.


하필 그네들 밥을 안챙겨 나온 날이라


계속 손짓을 하며 집 앞으로 따라 오라했지만


사람 발걸음 따르기는 버거웠는지


가만히 몸을 내려 앉는다.


금방 오겠노라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하고


부리나케 쫓아 들어간 집 찬장에서


파란 띠가 둘러진 캔을 손에 쥐고선


온 길을 바리 따라 나갔지만


고양이는 이내 사라지고 없었다.


쭈쭈쭈 소리를 내고 들으라고


깡통을 두들겨본다.


그래도 그이는 보이지를 않는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잠깐이면 됐는데,


맘 바빠 보채며 집으로 가느라


돌아보지 못한 내 등이 원망스러웠을까.


역시 기대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한숨 쉬고 돌아섰을까.


오늘 하루 한 끼라도 배불려주고 싶던 내 맘이


못내 갈데가 없어 미안해 한다.



언제고 우리 만나자.


못주었던 한 끼도 내 마음도


꾹꾹 눌러 담아 줄테니


꼭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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