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muan Aug 12. 2021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

아이와 함께 점검해보는 비인지능력 키우기 엄마 수업

지난 여름, <비인지능력 키우기 엄마 수업>이라는 책을 번역했고, 우여곡절 끝에 내 이름을 달고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외동딸을 하버드에 보낸 일본인 엄마가 쓴 책인데, 번역을 하면서 처음 이 ‘비인지능력’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 번역을 하는 과정은 그래서 더 특별했고, 소중했다. 옮긴이의 글에도 적었듯, 번역하는 동안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먼저 이 책을 만나게 되어 행운이다’라는 생각과, ‘조금 더 빨리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비인지능력’이란 시험 성적이나 IQ처럼 수치화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총합적인 인간력을 가리키는 말로, 꺾이지 않는 마음, 상상하는 힘, 대화하는 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힘, 행동하는 힘, 해내고야마는 힘, 참는 힘 등 실제 생활에서 몸에 익힐 수 있는 살아가는 힘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4차 산업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능력에 관한 책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수학공식이나 영어단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능력임에는 틀림없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이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는 커녕, 이 능력의 개념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출판사에서 10권을 보내주셔서 아이들에게 ‘엄마 책 나왔어’하고 보여줬더니, 8살 큰 딸이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색연필을 가져와 엄마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항목들에 친히 별표를 해주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아이들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매번 잘 지키지 못했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후회하는 일상의 반복인데, 이번 기회에 철저히 아이의 관점에서 평가를 받아보게 된 것이다.

아이가 체크한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엄마인 내가 지금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들, 내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인 내가 꼭 지켜줬으면 하는 것들인 셈이다. 


-      아이가 가진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게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      부모도 아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      큰 소리치지 않는다

-      (아이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혼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기분을) 존중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라고 받아들여준다


-      아이의 물건에 대한 규칙은 아이가

-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일거리를 가져가지 않는다

-      부모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      아이에게 자주 말을 건다

-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      아이에게 감사한다

-      아이를 제대로 보고, 제대로 칭찬한다

-      아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와만 비교 OK)

-      아이의 감정이 폭발했을 때에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      아이의 마음을 ‘비단으로 감싸듯이’ 키운다


챕터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아이가 책 한 권을 보면서 별표를 한 문장들인데, 내가 스스로 예상한 것보다 아이의 평가는 더 냉정했다. 미안하다 아가야. 아이가 그 동안 엄마인 나와의 관계나 여러 가지 상황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어떨 때 속상했고, 좌절했는지, 어떤 부분들을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적나라하게, 지금이라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리고 왜 이 문장들에 별표를 했는지 아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의 물건에 대한 규칙’이라는 소제목 뒤에 ‘아이가 (스스로 정하게 한다)’를 덧붙인다거나,

‘아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뒤에 ‘어제의 나와만 비교 OK’라고 달아놓은 것을 보고 내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생각이 많고 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못나고, 이기적으로, 어리석고, 제멋대로인 엄마인지 반성하면서 자책하고 후회하는 대신 나는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좀 더 해주려고 노력하고,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좀 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이렇게나 많은 별표를 받고도 나는 또 아이를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했고, 아이가 하는 이야기보다 일에 관련된 카톡에 더 정신을 팔았고, 몸이 힘들다고 짜증 섞인 화를 내버렸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 노력하는 엄마가 있을 뿐.




작가의 이전글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