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인생 첫 조문을 다녀왔다.
대학시절 우연히 가까워졌다가 졸업 후에도 꾸준히 친분을 유지했던 언니의 부친상을 다녀왔다. 최근 간단히 연락을 주고받았었는데 그러고 며칠 안 되어 부고장이 날아왔다. 전날밤에 부고장을 확인했고,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준비하고 나와 장례식장을 향해 출발했다. 거리가 꽤 되는 곳이라서 차를 끌고 가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약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했다.
이미 4명의 조부모님 장례를 치러본 사람으로서 장례식장에 가면 조의금 봉투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혹시나’하는 변수가 싫은 대문자 J는 다이소에 들러 조의금봉투도 구매했다. 역시나 장례식장 입구에는 조의금 봉투가 수북이 준비되어 있었다. 뒷면 좌측 하단에 내 이름과 소속을 적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해당 빈소 앞 방명록에 내 이름을 적고 부의를 했다. 언니는 먼저 온 본인의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친구들을 맞이하기 전 나와 눈이 마주쳤고, ‘왔구나.’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집에서 미리 유튜브로 ‘조문하는 순서 및 방법, 주의할 점’ 등의 영상을 정주행 했다. 그 덕에 큰 실수 없이 나의 첫 조문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향에 불을 붙였는데 아무리 손을 흔들어 끄려고 해도 잘 안 되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끝내 잘 끌 수 있었다. 그리고 상주들을 향해 허리 깊이 숙여 인사를 건넸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긴장되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언니는 나를 소개하려 했지만 우리의 복잡한 관계를 분명히 소개하기 어려워 보였다. 오열하는 언니를 안고 잠시 위로해 주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쭙잖은 위로보단 침묵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저 언니를 다독여주었다.
혼자 방문한 나는 앞서 왔던 언니의 지인들과 합석했고, 간단히 식사를 했다. 언니의 남자친구분과도 인사를 했다. 오래전부터 이름과 일화만 듣고, 사진으로만 뵀었는데 실물은 처음 영접했다. 남자친구분도 나에 대해 많이 들었었다고 화답해 주셨다. 언니의 친구분들은 일찍 일어나셔야 한다고 해서 금방 발길을 돌리셨고, 나는 언니와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언니의 남자친구분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주는 정신없는 법이기에 상주를 찾기보단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그러던 중 뒤쪽에서 오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측하건대, 돌아가신 언니 아버지의 어머니인 듯했다. 본인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과 보고 싶은 그리움과 아쉬움에 통곡하셨다. 참고 있었던 눈물이 차올랐다.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서가 삶을 등지는 순서가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셨고, 또 우셨다.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여실히 느꼈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히 살아가야 함을 다짐했다. 지나간 과거에 우울해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에 불안해하지 말고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우울과 불안에 힘들었던 내게 가르침을 준 하루였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그렇다, 살아있는 지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열심히 즐겨야 한다.
조금은 대담하게, 조금은 솔직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