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로 만나는 시간의 소중함
나이를 들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1:1 만남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삼삼오오 혹은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한 자리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단체 만남은 '매번'이 아니라 '종종'이어야 메리트가 있는 일이다. 무리 지어 만날 땐 좋게 말하면 에너지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알맹이가 없는 붕 뜬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가족 관계마저 그렇다. 부모님 두 분과 함께 말하는 것과 아빠랑 단 둘이 혹은 엄마랑 단 둘이 카페에 가서 얘기를 나눌 때 대화의 주제와 그 깊이가 사뭇 달라진다.
나에겐 누군가와 함께 만나면 어색하지 않은데 1:1로 만나면 급격히 어색해지는 지인이 몇몇 있다. 이런 관계들을 골똘히 생각해보면, 친구의 친구라서 어쩌다 보니 어떤 그룹으로 함께 묶여버린 인연이다. 중간 다리의 누군가가 화장실이라도 갈 새면, 대화 소재가 바닥을 드러내고 급격히 머쓱한 시간이 도래하는 사이.
신기하게도 늘 무리 지어서만 만난 사람과는
시간이 흘러도 서로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
긴 시간 자주 만났더래도 서로에게 하이라이트를 비춘 적은 없었기에 몇 걸음 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다. (그냥저냥 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쌓이면, 때로는 그 관계도 시간 덕분에 의미가 커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서로가 관계 다이어트의 정리 대상 1순위지 않을까?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매력적인 지인이 있다면 1:1로 만나 보려고 한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의외의 면을 보고 흥미로웠던 적이 많다. 언제나 거국적인 만남이 주를 이루는 모임에서 만난 O양도 그중 하나다. 그 모임에서 그녀는 초하이텐션에 잔망스럽고 개구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따로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O양은 잔잔하며 감성적이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타입이어서 놀랐다. 회사에서 만난 상사 K도 그랬다. 일할 때는 완전한 FM을 보여주는 각 잡힌 군인 같은 선임인데, 퇴근하고 둘이 술 한잔 마실 때는 180도 다른 면모를 봤다. 칼 같은 모습의 그녀에게서 연하 남자 친구와 깨 볶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생각해보면 내 남자 친구도 그렇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가끔 엉뚱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낯 가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걸 퍽이나 싫어한다. 그리고 보편적이고 진지한 편이다. 누군가에겐 나 또한 이중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겠지.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의 밀도가 촘촘해지는 1:1 만남에 중독되고 나선 웬만해선 단체 만남은 지양하게 됐다. 회사에서의 점심시간도 그렇다. 날마다 하루 1시간이라는 점심시간이 모이고 모이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모른다. 그래서 동기나 상사와 1:1로 약속을 잡고, 서로에 대해 넓고 깊게 대화를 나눈다. 한 번의 만남으로도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한다. 대충 아무나랑 뭘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겠지만 배 부르게 먹고, 영혼 없이 영양가 없는 회사 얘기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점심은 최악이다. 1시간이지만 어떻게 보내냐에 따라 시간의 무게가 참 다르다.
더 어릴 때는 넓고 얕은 관계를 좋아했다. 인맥은 넓지만 서로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고 호감을 갖고 있는 정도가 편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단짝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었고 갖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단짝이 되는 건 부담스러웠고 여전히 그렇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넓고 가벼운 인간관계는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해내는 일이고, 인맥이 어마 무시하다고 내 역량 없이 뭐든 턱턱 풀리는 건 아니니까.
대신 단 둘이 만나서도 에피소드별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건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중요한 결정을 하기도,
가치관이 변화하기도 하니까.
대화의 상대가 다양할수록
나라는 사람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단짝 친구를 만들 생각은 없지만, 계속해서 1:1 프로젝트를 이어 간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모임에서의 그와 내 앞에서 혼자만의 생각을 꺼내 말하는 그는 참 다를 수 있으니까.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한 친한 지인들 일수록 1:1 프로젝트의 인사이트는 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