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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많이 Jul 19. 2020

7평 원룸의 반짝이는 찰나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 집의 순간순간

7평 남짓의 작은 원룸에 산다. 집이라기 보단 방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꿋꿋이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복층이라 층고가 높고 창이 커서 크기에 비해 답답한 느낌이 들진 않는다. (복층은 전혀 쓰고 있지 않지만, 있어줘서 고맙다 덕분에.) 신축 오피스텔이라 가구와 바닥은 우드 앤 화이트로 깔맞춤해 아늑하다. 어쩌다 옆 방에 혼자 사는 여자가 엄청난 목청으로 사투리를 내뱉으며 전화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지만. 창밖이 바로 8차선 도로인지라 구급차가 밤새 출동하는 소리가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뭐, 혼자 살기에 적당히 불편하고 충분히 안락하다.


오늘은 제주도에 짧은 휴가를 다녀와 출근한 1일 차다. 회사에선 120통 까지 쌓인 메일을 다 읽지도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대차게 찌들다가 퇴근했다. 그래서 오늘따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반짝거린다. 이왕 그런 김에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의 찰나들을 적어보려 한다. 아껴 먹으려 어딘가에 숨겨둔 초콜릿을 우연히 발견해서 꺼내 먹는 기쁨처럼 행복의 순간을 고스란히 적어두면 언젠가 몇 배로 다시 느낄 수 있으니까.


노을이 지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사실 노을이 지는 무렵엔 밖에 있을 때가 많아서 볼 기회가 흔치는 않다. 그래도 회사가 정기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게 되면서, 여름이라 낮이 길어지면서, 온종일 집에서 주말을 보낼 때, 간간히 볼 수 있다. 한쪽 벽면이 거의 꽉 차게 유리창이라 빛이 들어오면 온 집 안이 햇빛의 에너지를 흠뻑 받는다. 그 순간에 맞춰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스트레칭 요가를 하거나, 오븐에 갓 구운 빵과 샐러드로 가볍지만 감칠맛이 도는 이른 저녁 식사를 하거나, 잔잔하면서 리드미컬한 음악을 틀고 책을 읽으면 안성맞춤이다.


해가 저물고 나서 깜깜한 밤 시간 만의 매력도 있다. 살짝 땀이 나게 운동을 한 뒤에, 과일 향이 나는 바디워시로 샤워를 한다. 밀린 숙제 하듯 귀찮아하며 바디크림 뚜껑을 열어 대충대충 묻히지만, 결국은 듬뿍듬뿍 여기저기 바른다. 상쾌하고 촉촉하고 나른한 몸에 부드럽고 가벼운 슬립을 걸친다. 혹시나 음악이나 TV가 켜져 있었다면 끄고, 침대 옆 창문을 활짝 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 전체의 모든 불을 끈다. 그 상태로 침대에 기대면, 시원한 여름밤 공기가 느껴진다. 집 안은 고요하게 내려앉은 와중에 창 밖으로는 멀찍이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린다. 착 가라앉은 밤의 분위기를 만끽하면, 격한 감정들은 씻겨 내려가 냉철해지기도 하고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몽글몽글 해지기도 한다. 무언가에 골똘히 몰두하기에 적합한 깊은 밤의 한가운데. 그래서 이 상태로 글을 쓰거나, 하루를 정리하는 생각에 잠기거나, 누군가와 스마트폰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이런 시간들이 전혀 외롭지 않고 오히려 내면이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아무리 집이 넓어지고 방 별로 공간이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둘이서는 지금처럼 온전히 평화롭진 못할 것 같아서.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 집에서의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네. 이미 즐기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즐기며 살아야겠다. 7평이지만 30평만큼의 안식을 주는 우리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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