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많이 Jun 03. 2020

평일 불가침 조약

일주일에 5일, 온전히 지켜내기


나는 나와 <평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이 평화적인 조약의 내용은 간단하다. 평일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일주일에 5일을 혼자만의 시간으로 지켜내는 것. 물론 회식과 같은 불가피한 일정은 논외 조항으로 포함된다. 이토록 평일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학습효과다. 평일을 무참히 흘려보냈던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평일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다.



일단, 내 삶의 대부분은 평일이라는 사실이다.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에겐 일주일의 5일이 평일이다. 꿀 같은 주말은 단 이틀뿐이다. (대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어떻게 토요일도 일했나 싶다. 존경한다.) 일요일 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어김없이 '내일 왜 월요일..?'이라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평일은 우울한데 상대적으로 주말만 행복하면 월요병이 더욱 극심해진다. 일상의 70%를 차지하는 평일을 알차고 행복하게 보냈더니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 기분이 든다. 평일을 근근이 살아갔다는 성취감을 느끼면서 주말이 좀 더 행복해지는 효과도 있다.



'평일을 꾸준히 생산적으로 보내는 것

vs

'주말을 반납하고 몰두하는 것'


평일과 주말의 절대적인 시간 차이는 또 다른 격차를 가져온다. 같은 일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어차피 주말에 무언갈 한다고 해도 48시간을 통째로 갈아서 그 일에 몰입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매일 출근하는데 주말마저 마음껏 놀 수 없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뭘 하든 평일이 더 효과적이다. 특히 운동처럼 1시간 내외로 투자하는 일은 주말에 내내 할 필요도 없거니와, 평일에 5일을 하고 주말에 잠깐 쉬는 게 낫다. 학원 강의도 주 5 일반이 주말반보다 열정이 넘치고 실력도 빠르게 향상하는 것처럼, '조금씩 자주'하는 효과가 크다.



평일 엉망진창으로 보내면

다음 평일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평일에 약속이 무수히 많던 시절이 있었다. 퇴근 후에 친구들을 만나서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술을 먹고, 다음날 기적처럼 새벽에 눈을 뜨고 말짱히 출근해 앉아있기도 했다. 문제는 다음 날이다. 어젯밤 부어라 마셔라 했던 터라, 속도 편하지 않고 잠도 부족하다. 생기를 잃은 초췌한 얼굴은 덤으로 따라온다. 일하는 내내 집에 가서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결국 일에 집중하기 힘들고, 퇴근 후에 잠만 자느라 다음 날도 함께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루의 술 약속이 결국 이틀을 없애는 셈이다. 어쩔 땐 퇴근 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 배달 음식을 시켜 과식 파티를 한다. 통통한 배를 쓰다듬으며 무료하게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 어느새 잘 시간이 되어 하루를 싱겁게 끝내기도 했다. 이런 날은 순간은 기분이 좋지만 잠자리에 들 때면 우울한 기분이 증폭됐다. '아,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그냥 갔네.' 헛헛한 마음은 음식이나 침대에서 뒹굴거림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퇴근 후에 녹초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 묶여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당연하다. 그렇다고 퇴근 후에 술자리에서, 침대에서,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다면 더더욱 회사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게 내 결론이다. '회사에 모든 걸 쏟아부어서 아무것도 못했다.'는 심리 때문에 일에 대한 보상심리만 커진다.


의지를 가지고 체결하긴 했다만, 나도 처음부터 <평일 불가침 조약>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오후 5시부터는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에 신나서 이것저것 충동적인 욕구가 들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으면 그렇게 퇴근 후에 술 한 잔을 하고 싶다. 비라도 내리면 샤워하고 이불에 폭 싸여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다 스르르 잠들고 싶다. 여전히 매일매일 수많은 유혹이 도사리지만, 결국은 평일 저녁을 잘 사수하고 있다. 가장 의지가 넘치는 잠들기 전과 아침 출근길에 미리 목표를 세우면, 나 자신에게 지기 싫어서 웬만한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게 된다. 지금도 퇴근 후에 카페에 와서 글을 쓰는 중이다. 이제 집에 들어가서는 홈트를 하고 내일 회사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야지.


당장 이번 주 만이라도 나에게 생산적인 무언가를 평일에 매일 1가지 이상 한다면, 분명 달라질 수 있다.


하루에 3시간, 일주일에 5일, 한 달에 20일.
소소한 평일 저녁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