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의 긴 연휴가 끝나고, 평온한(?) 일상이 돌아왔다. 남편은 출근하고 집에는 대박이와 단 둘이 남았다. 설 연휴는 북적였다. 아들네 세 식구가 와서 며느리는 2박 3일, 아들은 손자와 함께 4박 5일을 머물다 갔다. 24개월이 갓 지난 손자의 재롱을 4박 5일 동안 만끽했더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더라.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좋은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기쁨은 주는 존재가 손자라는 사실을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있다. 손자의 존재가 이런 거구나, 하는.
한데 흥미로운 건, 그렇게 사랑스러운 손자가 4박 5일 동안 머물다 갔는데, 아쉬움만 남지 않는다는 것. 뭐랄까 안도감 혹은 편안함 같은 기분도 덩달아 찾아온다는 것. 누군가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더라. 이제야 그 느낌이 뭔지 확실히 깨닫게 되는 건가. 흐훗.
대박이는 소파에 누웠다가, 내가 하루를 보내는 서재에 와서 누웠다가, 거실로 나갔다가 하면서 줄곧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엄마가 언제 나를 데리고 산책을 가려나, 하는 것이다. 산책을 다녀오면, 나한테서 신경을 거두고 종일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남편이 귀가하기를 기다린다.
해가 바뀌면서 한 살을 더 먹게 된 대박이가 걱정된다. 9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추정이다. 유기견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수의사 선생님이 대략 알려준 나이를 셈할 뿐이다. 우리가 대박이를 입양했을 때, 대박이는 2살로 추정되었고, 우리는 당연하게 그 나이를 대박이의 공식적인(?) 나이로 인정했다. 그리고 올해 9살이 되었으니, 햇수로 7년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박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기를 바란다. 대형견은 소형견에 비해 수명이 짧다고 해서 그것이 걱정일 뿐.
그렇다고 소형견이 꼭 오래 산다고 할 수는 없다. 소형견 치와와 삼돌이는 대박이보다 훨씬 오래 살겠거니 했는데, 교통사고로 순식간에 죽었다. 그때의 그 황망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 경험을 통해 생명체의 수명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박이가 건강하게 최소한 15살 이상은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연휴가 끝나서 집안은 조용해졌지만, 대신할 일이 잔뜩이다. 빨래와 청소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지만, 저장해 두었던 무들을 처치해야 한다.
지난가을에 수확해서 김장을 담그고 남은 것들을 컨테이너 농막에 보관했는데, 날씨가 추워지자 얼기 시작했다. 내가 농막에 두면 언다고 했지만, 남편이나 아주버님은 잘 갈무리하면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내 말이 맞았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데, 지가 무슨 수로 얼지 않고 배기나. 얼지 않은 것들을 챙겨서 집으로 가져왔고, 열 개쯤은 장아찌를 담갔다. 그리고 무나물을 만들어 먹고, 무조림을 하고, 무생채를 만들어 먹었지만, 그래도 남았다. 한 10개쯤 남았나? 대여섯 개는 깍두기나 섞박지를 담아야겠다. 겨울 내내 가득 찼던 냉장고가 조금씩 비기 시작하니, 깍두기를 담아도 들어갈 공간이 생긴 것이다.
시골에 살면 미니멀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농사를 지으면 그렇다. 가을에 수확한 농산물들을 그대로 두면 상하니까 손질을 해서 냉동실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냉동실은 꽉 찼었다. 여름에 수확한 블루베리, 청양고추, 빨간 고추, 손질한 단호박들. 그리고 가끔씩 사 오는 생선이나 오징어, 고기 종류도 집어넣어야 하니,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냉동실은 빈 공간이 없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가면서 조금씩 꺼내먹다 보면 공간이 조금씩 생긴다. 아마도 2월이 지나면 빈 공간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 공간을 채울 것들이 밭에서 쏟아질 것이고...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겠지. 더불어 나는 더욱 나이를 먹을 것이고.
연휴가 끝났구나, 하면서 달력을 보니 1월의 마지막 날이다.
2025년이 시작된 게 바로 어제 같은데, 한 달이 후딱 지나갔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일상에 괜히 하나의 눈금을 긋고 싶어서 마지막과 시작에 의미를 부여해 봤다. 그래봤자 변화가 거의 없는 일상이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기분전환은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