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히카의 <노인 호텔>
하라다 히카. 이소담 옮김. 1판 1쇄 발행 2025. 1. 24
하라다 히카의 <노인 호텔>을 펼쳐놓고,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그이의 작품을 2023년에 4권이나 읽었더라. <낮술> 시리즈 3권과 <우선 이것부터 먹고>였다. <낮술>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낮에 술을 마시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이의 책을 3권이나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 어찌나 아쉬운지 입맛을 쩍쩍 다셔야 했다. 더 읽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우선 이것부터 먹고>도 찾아 읽었다는 거 아닌가. 그랬는데, 그 이를 까맣게 잊었더라.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시간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책날개에서 작가 소개를 보지 않았다면 <낮술>을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를 꼭 읽는다. 익히 잘 아는 작가이든, 처음 대하는 작가이든 상관없이. 짧게 정리한 작가의 이력이나 발표한 작품들에 대해 미리 알아두면 좋잖아.
그래서 <노인 호텔>도 책날개에 있는 하라다 히카에 대한 소개를 읽다가 <낮술>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보던 제목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서 내 블로그의 '독서메모'를 검색하니, 있더만(읽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메모를 꼭 남기려고 한다. 이걸 슬프다고 해야 하는 건지,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이런, 읽은 책도, 작가도 기억을 하지 못하다니, 하면서 한탄을 했지만, 나이가 드니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아지는 것을 어쩌랴. 흐르는 세월을 탓해야지.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쓴 작가라니, 갑자기 <노인 호텔>에 대한 기대가 상승했다.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하는 작가라는 생각에서. 재미가 없으면 작가의 책을 4권이나 연이어서 읽었겠나. 여기서에서 잠깐 솔직하게 밝히자면, 읽은 책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낮술>을 읽으면서 술이 땡겨서 안주를 만들어서 좋아하는 맥주를 홀짝였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서론이 길었다. <노인 호텔>은 제목에 끌려서 샀다.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만, 한 달에 서너 권은 구입한다. 소장하고 싶거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을 위주로. 가끔은 팔아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기도 한다. 좋은 책을 썼는데 팔리지 않으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오지랖에서.
<노인 호텔>의 노인 호텔은 노인들이 장기 투숙하는 호텔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노인들만 장기 투숙하는 호텔은 아니고 장기 투숙하는 노인들이 많은 호텔이라는 얘기다. 아무리 변두리에 있는 호텔이라도 장기 투숙을 하려면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돈 있는 노인들만 이 호텔에 장기 투숙할 수 있다. 그런 노인들 가운데 아야노코지 미쓰코라는 78세 노인이 있다. 한때는 건물주였던.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요 등장인물은 24살인 엔젤. 기초생활수급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엔젤은 7번째 아이이자 막내였다. 엔젤의 부모는 일을 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에 기대 살기 위해 아이들을 낳고 또 낳았다. 아이들이 생활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부모가 무책임했다는 것. 부모에게 아이들은 돈줄이었을 뿐이라서 거의 보살피지 않았다. 하다못해 올바른 젓가락질조차 가르치지 않았다. 자식을 방임하면서 돈줄로만 보는 부모를 가진 소녀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모른다. 결국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빈민이 되어 살아갈 뿐이다.
엔젤은 호스티스로 일할 때 우연히 만났던 아야노코지 미쓰코가 노인 호텔에서 장기 투숙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이에게 접근하기 위해 호텔에 비정규직 청소부로 취직한다. 목적은 하나. 부자인 미쓰코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을 배우려고. 언젠가 미쓰코는 '누구든 부자가 될 수 있다'면서 엔젤에게 그녀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혼자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던 엔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미쓰코에게 직접 배우고 싶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미쓰코가 가르쳐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물어는 볼 수 있잖아. 거절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당연한 수순으로 엔젤은 미쓰코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미쓰코는 엔젤에게 마음을 열고, 부자가 되는 법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준다. 그래서 엔젤이 부자가 되었느냐고? 그거야 엔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미쓰코에게서 배운 방법을 착실히 실천한다면, 절대로 가난하게 살지 않겠지만.
그 후로 엔젤은 미쓰코의 방에 가서 살림 관리법과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냄비로 밥을 짓는 방법과 된장국을 끓이는 방법을 배우고, 주먹밥 만드는 법을 배우고, 요금이 비싼 휴대폰 회사를 해약했다. - 264
이 책은 엔젤이라는 젊은 여성이 무책임한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하여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엔젤이 미쓰코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미쓰코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달라면서 다가가지 않았다면, 엔절은 삶의 목표를 갖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엔젤을 통해서 사회의 밑바닥에 사는 젊은이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더라도 조금만 용기를 내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작가의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술술 읽힌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지(엔젤처럼 젊은 사람이라면 부자가 되는 방법을 실천하겠다고 나설 지도 모르겠다). 미쓰코처럼 변두리 호텔에 장기 투숙할 것 같지는 않지만, 누군들 자신의 앞 날을 장담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