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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Nov 18. 2017

About | 우리집

Home, Sweet Home

우리 인생의 가장 돌아가고 싶은 그 집을 꿈꾸며..


우리집에 대한 기억.

# 다섯 살 무렵.
작은 연립 주택.
동네에 있던 피아노 학원.
엄마 몰래 여동생과 미용실 놀이를 한다며 가위를 들고 동생의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그 작은 방.

# 일곱 살 무렵.
우리의 첫번째 아파트 집.
깨끗한 새 집으로 이사했던 그 두근거림.
막내 동생이 태어나서 굳게 닫혀있던 엄마방.
꼬물꼬물 너무 예쁜 아가가 숨어있는 그 방으로 향했던 떨림.
동생과 똑같이 수두가 걸려서, 간지럼증을 이겨내라며 절대 허용되지 않았던 침대에서 방방 뛰어도 되었던 엄마아빠의 방.

# 아홉살 무렵.
새롭게 2단지가 지어지고, 조금 더 넓어진 우리 집.
엄마아빠와 함께 자는 월요일마다 일찌감치 이불을 펴고 서로 엄마아빠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초저녁부터 누워서 서로 굴리고 굴리며 꺄르르 댔던 세딸들의 유쾌함이 그득했던 그 안방.
야구 선수 아빠를 둔 윗집 아가가 매일 5층에서 던져대는 신발을 주워 나르던 그 계단.
동생들과 투닥거리다 엄마에게 붙잡혀 손들고 무릎꿇고 벌 세워졌던 그 아파트 복도.

# 열한살 무렵.
또다시 3단지 새집으로 조금 더 넓어진 우리 집.
페치카에, 아빠의 미니바. 세 딸들의 세개의 책상이 쪼르륵 모여있던 공부방.
이층침대에 바닥매트리스까지 세 딸들이 함께 쪼르륵 잠들고 수다떨던 침대방.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한다며 데코레이션에 춤공연까지 분주했던 그 어느 해 겨울의 우리의 거실.
일본에 지사장으로 파견가셨던 아빠의 부재로 항상 그리움이 가득한 편지가 그득그득 쌓였던 현관.

# 열네살 무렵.
새 아파트 분양에 성공했던 우리 엄마아빠.
어마어마하게 넓어진 우리집.
이사 전 빈 집에 가서 달리기 시합을 했던 우리 세딸.
기분좋은 나무들로 채워졌던 집 앞의 공원.
많은 가족들이 오고갔던 우리집.
대학 합격 소식과 함께 아빠와 막걸리 한잔 마주했던 그 식탁.

# 그리고 대학 입학 즈음, 그 집을 잃고 나서.
우리 가족에게 그 집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가족의 가장 반짝였던 어느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과 같았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막내는 매일 등하교 시간 그 집을 올려다보며, 반드시 엄마아빠에게 그 집을 되찾아줄거라며 수차례 다짐했다.

# 서울 자취방, 그리고 일산의 엄마아빠집
그리고 나서 우리 가족들은 뿔뿔이 떨어져지내게 되었다.
나와 둘째는 서울 자취방에, 막내는 학교 앞에서 하숙을 그리고 엄마아빠는 일산으로 이사하셨다.
그렇게 몇년, 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도 없는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 결혼, 우리집
엄마아빠도 어느 정도 일산에서 자리 잡으시고 엄마아빠가 좋아하는 그런 집이 다시 생겼다. 식물원인지, 우리집인지 혼돈이 갈 정도로 가득가득 초록초록 잎들이 가득한 그 곳이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우리집’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 곳에서 우리 세딸은 모두 결혼들을 하고, 각자의 집들이 생겼다.
서울에, 오산에, 강원도에, 일산에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되다보니, 우리가 일생을 두고 다시 찾고 싶었던 '그 때 그 집'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 집’이 지금의 ‘그 집’인듯 그렇게 잊고 살아가게 되었다.

# 다시 한번, 우리집

아이를 낳고, 엄마아빠가 함께 살게 된지가 아이의 나이 숫자만큼,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엄마아빠의 집은 정리되고, 한 집에서 함께 완벽한 한 가구가 되었다. 그 십년동안 항상 내 마음속에는 ‘이 집 자체가 세상 전체’인 딸아이를 위한 완벽한 공간이기를 바라며, 나를 위해, 내 딸을 위해, 우리를 위해 결국 노후의 시간을 희생해주시는 나의 엄마에게 ‘조금 더 나은 삶의 공간’이 되어주기를, 매일 거실이 본인의 방이 되어야 했던 아빠에게 ‘온전한 공간’을 드리고 싶은 것. 그리고 작은 서재 하나가 고작 본인이 두팔두다리 뻗고 누울 유일한 공간이었을 서방에게 ‘조금은 더 즐길 만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그 나날이 하루하루만큼, 십년, 삼천여일동안 키워져갔다.


# Home, Sweet Home

회사를 이직하면서, 거주 지역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새로운 공간을 찾아나선 내게, 사실 ‘그 때 그 집’에 대한 기억을 떠오릴 겨를은 없었다. 그저, 지난 십년동안 내 마음속에 꾸물꾸물 커졌던 가족들의 공간에 대한 바램만이 내 등을 떠밀었을 뿐이었다. 집을 내놓고, 매매 계약을 완료한 것이 두시간, 그리고 다음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집을 계약을 완료한 것이 반나절.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우리들의 공간에 대한 첫발을 거침없이 주저없이 내딛었다.

그 날 밤, 집 이사를 결정했다며 매매 계약서들을 보여들렸더니, 나의 아빠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고생했다하고 두어번 어깨를 토닥이셨다. 엄마는 새로운 곳에 빨리 가고 싶다며 벌써 안달이 나 있었고, 동생들은 내게 고맙다고, 언니가 ‘그 때 그 집’을 되찾아준것 같다며 감탄해했다.

그제서야 문득, ‘그 집’이 생각이 났다. ‘우리집’ 일생의 가장 행복했던 ‘우리집’, 바로 그집. 그리고는 우리가 내딛은 첫발의 저쪽에 덩그러이 놓여진 새로운 ‘우리집’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집은 어떤 집이 될까.

40에서 60세까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Maximum Speed를 자랑하겠다던 나에게, 이 집은 그 스피드를 이견고 돌아올 나를 위한 가장 따뜻한 곳이어야 할 것이며,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서방에게도 그 시작을 응원해 줄 가장 든든한 곳이어야 할 것이고, 가족의 울타리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성장하게 될 우리 공주에게도 가장 행복한 곳이어야 하고, 그리고 나의 엄마아빠에게는 두분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완벽한 곳이 될 그런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우리의 스윗홈 프로젝트

눈물 콧물 쏟아내며 나는 나의 이런 이야기를 첫번째 인테리어 회의를 하는 날 나의 집을 그려줄 그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들이 함께 긴 시간 정말 하나하나, 함께 그 공간을 완성해주었다. 마지막 입주하기 전날 새벽까지 함께 밤을 새며, 그 완성되어가는 그 공간을 지켜주었던 Verde.co 의 아름다운 그녀들에게 내가 감동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한곳 마음 다해 사랑한 공간들로 탄생되었던 것도 감동이었지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첫 헬싱키’의 작가 소은님이 직접 우리집의 ‘올리부 나무’ 그림을 그려주고, 나와 공주의 여행의 한 순간을 그림으로 선물받았던 그 날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매일 집에 돌아와 미소 짓는 공간이 내 앞에 놓여있음에 그녀들에게 감사하며 잠들곤 한다.

새로운 이 공간으로 이사온지, 어느새 2달이 되어간다.

엄마아빠는 매일매일이 행복하다며,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가을의 나뭇잎들마저도 감탄하며, 감동하며, 인생에서 그렸던 그 집이라고 좋아하신다.

서방은 본인 방에서 편안하게 그 공간을 누리고 있고, 나와 공주, 두 여자의 동거 공간은 그렇게 매일매일 따뜻한 종알거림이 흘러나온다.


우리 공간, 나의 공간

그렇게.. 나의 스윗홈, 앞으로의 십오년을 함께 하겠다고 시작한 이 공간이 그렇게 채워져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그 공간이 가진 힘이 어떠한 에너지로 나에게 전해지는지, 나를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 그것을 온연히 느끼며.

오늘도 우리집, ‘그 집’에 온 가족이 함께하며, 감사하며.

우리의 하루를 그렇게 행복함으로 채워간다.

짜잔 초록초록 우리 버블바스 플레이스
여기가 바로 에이미 포켓몬센터 :)


Thanks to Verde.co-Seungmi&Minjeong, Soeun&Hoon_Buttet & Jin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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