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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Jan 25. 2016

About | 의연해진다는 것

담대히, 의연히 그렇게 살리라 마음 먹었던 그 순간들

내 삶을 담대히 살아가리라.

나이 서른이 되면서 속으로 되내이고 되내였던 결심이었다.

나의 마흔이 넘어서면서 나는 다시 되내이고 되내인다.

내 삶의 어느 순간도 담대히 맞이할 수 있는 의연한 사람이 되리라.

그런데 아직도 나는 의연하지 못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세 딸의 첫째딸이었던 나는 항상 부모님이 외출을 하시고 나면 혼자 휘몰아치는 불안감을 꽁꽁 싸매고 어딘가 숨어 눈물을 훌쩍이던 마음 약한 아이였다.

엄마아빠에게 혹시라도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두 동생들과 함께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걸까. 제일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왜 그런 벌어지지도 않았던 순간들을 상상하며 불안감에 쫒기고 눈물을 찔끔대며 심장을 조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매번 그랬다.

나는 내게 다가올 수 있는 "그 어떤 순간"에 의연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스물몇살이 된 어느 날,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고, 내게 있어 주어진 내 삶이 올곧이 나만의 삶인것 같다 느껴졌다. 작은 회사를 시작하자는 사람들과 함께 결정을 내리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마음 한 구석 앞으로 나의 일년 뒤가 상상되지 않는 그런 터널과 같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한 번도 "잘하지 못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 삶에서, "잘하지 못하는 삶"을 맞이할 수 있었던 그 해의 겨울을 나는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 동동거리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서른하고도 몇년이 지나,

나는 내 삶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다. 그렇게 숱하게 많았을 "나만의 시간"이 왜 그렇게 간절해졌는지...

이렇게 서른 몇해를 살아가고도 모르는 것이 투성이고, 자꾸 부족한 스스로를 다그치며, 옳고 그른 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며, 순간에 대한 결정을 앞에 두고 어리석은 선택을 어이없게 하는 많은 순간들에.

나는 참으로 의연치 못했다.


마흔의 하나. 지금의 나는.

몇일 전 밤에 잠이 든 딸아이가 미동도 없이 잠든 모습에, 손이 따뜻한지, 새근대는 숨결에 배가 들락날락하는지 잠든 아이의 손을 잡아보고, 끌어당겨 안아보고 하면서. 이 방의 문밖에 거실에서 잠이 드신 내 칠순이 넘으신 아빠, 그 건너방에 불면증때문에 혹여라도 잠이 깼다 숙면을 못 주무실까 걱정이 되는, 내일의 아침 준비를 걱정하며 잠이 든 엄마의 숨결이 더불어 느껴졌다.

그냥 오늘과 내일 사이는 작은 몇 시간들의 순간이 더해진 오늘의 연장선에 있는 시간들일 뿐이다.

오늘과 내일. 나는 오늘처럼 내일을 살것이고.

그런데 오늘 존재하던 순간이, 오늘 옆에 있던 누군가의 숨결이, 내일 존재하지 않을 수도, 내일 곁에서 느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마흔이 넘어서도 나는 의연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나는 언제쯤 의연하게 담대하게 모든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까.


의연하지 못하고 여리디 연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인것이리라.

단단해진다는 것은, 그 담대함에, 내 여린 속의 쓰라림을 드러내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힘인것일까.

어느 순간, 그 의연한 내가 필요한 때가 온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두렵다.

나는 아직도 의연하지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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