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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Feb 17. 2018

About | 그녀의 스무살까지의 여행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

# 여행의 기억
어려서부터 주말이면 어김없이 나의 아버지는 딸 셋을 뒷자리에 모두 태우고, 엄마를 옆자리에 태우고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 기억 중에는 함박눈이 오는 한밤, 위험한 여정에 함께 쉬어가자는 의미였는지, 큰 화물차 몇대가 앞서 하얀 고속도로 길에 부러 차를 세워놓고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펴자, 그 뒤로 모든 차들이 줄지어 세워놓고는 사람들이 눈밭이던 고속도로로 나와 함께 기지개를 펴고 아이들은 눈을 던지며 장난을 치던 어느 고속도로의 그 하얗게 반짝이던 길도 있고, 꼬불꼬불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다가 기름이 다 떨어져 어딘가로 달려가 기름통을 가져온 아빠의 모습도 있다.


# 여행 갈망
그런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레임을 얻는 것. 새로운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 그 곳의 사람들처럼 생각해보는 것. 그렇게 살아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 진 나는, 나의 스무살 이후, 그렇게 “여행 가고싶다”를 수없이 이야기하고, 그렇게 친구들과 작은 여행들을 열심히 다녀왔다. 대성리, 가평, 땅끝마을, 마라도, 완도, 부산, 통영, 충무, 제주도. 나의 스물의 다섯해는 대학 동기 녀석들과의 ‘작은 작당 끝 여행’들로 가득했다.


# 첫 여행의 시작
배낭여행의 붐이 시작되었던 나의 대학 시절, 이 곳이 아닌 어느 나라든 가보고 싶었던 스물몇의 나는 결국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혼자의 여행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그 이후 글로벌 회사로 옮기게 되면서 미국으로 출장을 가고, 시카고 출장을 가서 올라간 타워에서 그 아름다운 야경에 혼자 눈물범벅이 되어서는 인생이 아름답다, 엄마아빠에게 고맙다는 말을 중얼대었던 그 어느 날의 밤이 나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 새로운 주말의 시작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가 일어나 앉기 시작하면 어디를 가야지, 걷기 시작하면 어디를 가야지, 뛰기 시작하면 어디를 가야지 하며, 주말을 계획하고, 주말을 기대하며 시작한 것이 어느새 만 10년이 지나왔다. 아이는 매번 주말이 되기 전에 “엄마 이번 주말에는 뭐해?”라는 말을 수없이 내놓는다. 어느새 숙제처럼, 어느새 고갈된 주말의 “꺼리”를 찾아서 매번 “뭐할까?”를 나 또한 백번 내어놓는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 우리 모두의 여행

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하는 그런 여행들로 아이의 여권의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태국을 갔고, 사이판을 가고, 세부를 갔고, 싱가폴을 갔다.
나의 출장에 입이 뾰족 나온 아이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아빠의 평생 꿈인 다저스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더 늦기 전에 그녀에게 디즈니랜드를 보여주겠다는 호기로 미국 서부 여행을 하기도 했다.
생일 축하 여행으로 싱가폴을 예약했다가, 아이의 여권 만료일이 6개월이 채 남지 않아 공항터미널에서 싱가폴 티켓들을 모두 취소하고, 그 자리에서 홍콩 티켓을 끊고 호텔을 예약하고 홍콩 책을 하나 사서 떠난 즉흥 홍콩 여행도 있었다.
보라카이가 너무 좋아, 한번 가고 두번 갔다.
조카 녀석들과 함께 동경 여행도 갔었다.
그렇게 하나씩 쌓여가던 여행 중,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것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 Journey with You
그녀가 내 안에 있을때부터, 그녀는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내가 열정적으로 일하던 그 순간, 내가 일했던 그 책상, 그 의자에 그녀는 함께 했었고, 그 회의실에서도 그녀는 나와 함께 했었다.

나는 항상 그녀에게 내가 일하는 모습을, 일하는 장소를, 일하는 회사를, 일하는 사람들을 공유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시애틀로 가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보여주고 싶었고,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가치들을 공유해주고 싶었고, 페이스북, 구글의 사람들과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들을 보여주고, 내가 그토록 열망만 하던 스탠포드 대학의 캠퍼스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그 여행은 내가 가진 시간에서, 그녀가 가졌으면 하는 시간으로 옮겨가는 여행이었다.

10살이 되는 해, 왜인지 두자리 수의 나이가 된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 벅차오르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 단둘의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커다란 백팩을 샀기 때문에, 그녀가 오페라와 뮤지컬을 좋아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녀가 10살이 되었으니까의 이유들로 가득한 시작이었다.
런던-파리-피렌체-로마-나폴리를 거쳐 우리는 둘이 유럽의 낭만 가득한 여행길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11살이 되는 이번 해, 싱가폴 출장 이후 11살 생일 축하 여행을 호주로 계획하고는 이번에도 역시 그녀만큼, 아니 그녀보다 내가 더 많이 설레이고 흥분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호주 퍼스에서, 시드니까지 내가 혼자였을 때보다 그녀와 함께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여행을 다녀왔다.



# 순간을 공유하는 여행의 동반자

내가 그녀와 여행을 꿈꾸고, 여행길을 오르는 이유는,
우리가 인생의 여정, 그 여행길에 함께 해야 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엄마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지지자이기도 해야 하는 나는, 우리의 여행길에서도 또한 엄마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지지자이기도 한다.


# 서른 두살 차이 두 여자가 함께 사는 법
앞으로 그녀가 스무살이 되어 혼자의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에게는 9번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이번 여행길에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9번의 여행. 그녀에게 어떤 세상을 어떻게 보여주며,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고, 세상에 나아갈 한 발을 딛게 해줄 것인지.
그녀에게 우리 삶에서 함께 바라보아야 하는 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세상이 그녀의 삶의 우주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줄 것인지.
서른 두살 차이 나는 두 여자가 그 같은 여정에서 어떻게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가며, 지지하며 살아가고 걸어갈 것인지. 그 여정의 하나하나를 앞으로 어떻게 그려봐야할 것인지를 생각하다보니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다.
나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삶을 마주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나는 그 순간, 내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 용기와 마주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 용기를 통해, 내가 세상에 닿지 않았던 어느 순간과, 어느 장소와, 어느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 여행들은 그녀가 그런 나를 좇아 나보다 조금 더 용기있는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의 Journe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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