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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옥 Oct 06. 2021

올리브나무 사이로

학교에서 나와 만난 나의 아이들에게

  8. 완곡한 말솜씨     

 그 오랜 세월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배운 것도 많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처음에는 담임이나 수업 담당 교사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 어렵지만, 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도 종종 선생에게 한다.

 무슨 일을 계기로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해가 끝나가는 어느 날, 한 학생이 자기가 수업시간에 대답을 했는데 선생님이 틀렸다고 바로 말씀하셔서 참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다쳤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국어과 교사이고, 국어 과목은 대체로 수학처럼 똑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단숨에 틀렸다고 했다니, 설령 명백하게 동떨어진 대답을 했더라도 그렇게 반응할 일은 아니었다.

 그 이후 학생들이 질문에 대답을 할 때나, 나와 학생들이 소소한 대화를 나눌 때에도 완곡한 말솜씨를 발휘하려고 늘 조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와 나의 학생들 사이에는 분명하게 대처해야 할 일도 참 많았으니까.     


 9. 새로 오신 도덕 선생님     

 도덕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남자분이시고 나이도 좀 드셨는데 초임 발령이시다. 알고 보니 살아온 날들이 범상치 않았다. 조금 복잡하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하고 뜻한 바가 있어 출가하여 스님이 되셨단다. 한동안 스님으로 사시다가 무슨 생각이셨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기독교로 개종하고 환속하셨다. 그 후 교사 임용시험을 치르고 우리 학교에 오신 것이다.

 마음씨가 아주 고운 분이셨다. 학생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이 때로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지극하셨다.      


 예를 들자면, 교실에 들어갔는데, 우당탕 소란을 피우던 학생이 의자를 망가뜨려 놓은 것을 보게 될 때 보통 나는 큰 소리를 낸다.

- 무슨 짓을 한 거야. 얼른 목공실에 가서 고쳐 오지 못해!

목공실에는 솜씨 좋은 기사 아저씨가 있어서 망가진 학교 기물을 손봐 주신다. 급할 때는 담임이 아이와 함께 목공실로 가서 수리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면 좀 더 빨리 수리해 주신다.

 그런데 이럴 때 그 선생님은 의자를 들고 몸소 목공실에 가셔서 손수 고쳐 오신다. 이런 식으로 언제나 세심하게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을 베푸신다.

 4월 중순쯤에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잘 적응하고 지내는가 살펴볼 겸 교우관계를 조사하는데 그 설문지에 감초처럼 집어넣는 질문이 하나 있다. ‘상담할 일이 생기면 어느 선생님과 하고 싶은가?’ 또는 좀 더 직설적으로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선생님 중에 어느 선생님을 가장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대체로 담임이 가장 많은 표를 받는 법이다. 자기들을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교사가 아무래도 담임이기 때문이다. 

 그해에 나는 도덕 선생님에게 밀려서 2위를 했다. 좀 섭섭하긴 했지만 수긍할 만한 결과였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하던 도덕 선생님이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셨다. 임용시험 준비하느라 애도 많이 쓰셨을 텐데, 1년 만에 그만두시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실망을 많이 하시고 자신의 한계에 절망감을 느끼신 것 같다’고 한다. 깊은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심신이 지치셨나 보다. 

 학생들도 몹시 서운해 하였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다. 내가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한다 해도 쉽게 바뀌지는 않는 법이다. 선생 노릇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을 뛴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냥 사랑하고 베풀면서, 때로는 엄히 기준을 가르치면서 바위에 물방울 스며들 듯이 그렇게 가야 한다.     

그 당시 책 외판원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책이라도 잘 팔렸어야 하는데, 어떻게 살고 계실지,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10. 민이의 결석     

 민이는 오늘도 결석이다. 이제 겨우 3월이 끝나 가는데, 벌써 열흘도 넘게 결석을 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출석일수가 부족하여 3학년으로 진급하기도 어렵다. 하루 나오고 이틀 결석하고, 이삼 일 나오다가 또 결석하고 대중없이 학교에 나온다. 오늘은 가정방문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관악구에 있었는데 학생들은 주로 구로구, 영등포구 등의 구로동, 독산동, 신길동 등에서 배정받아 오고 어쩌다 여의도동에서 배정받아 홀씨처럼 날아오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둘 끼어 있다. 

 여의도동에서 오는 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 가정환경이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로 급속히 발전하던 그 무렵 각 지방에서 ‘서울 드림(dream)’을 품고 상경하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는 곳이 대개 영등포역이었기 때문에 구로구, 영등포구의 인구 밀도는 매우 조밀하였다. 나는 1979년에 교사가 되었고 민이를 담임하던 때는 1980년이었다.

 당시에는 교사의 가정방문이 허용되던 때라 문제가 생기면 나는 가끔 가정방문을 하곤 했는데 대부분의 문제는 가정방문만으로도 해결이 되었다. 가끔 가정방문을 가보면, 허름한 판잣집에 거적문으로 대문을 대신하는 집도 있었고, 공동 수도,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동네도 있었다. 어느 집은 안채에 주인이 살고, 마당가로 대여섯 가구가 빙 둘러 방 하나 부엌 하나씩 차지하고 모여 있기도 하였다. 방은 어둡고 부엌은 부엌이라 하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 명색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인데.

 민이네 집도 그 대여섯 가구 중 하나였다. 어둡고 좁은 방에 중병 걸린 아버지가 누워 계시고 엄마는 일하러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누나도 학교에 가고 없었다. 안채 주인아주머니에게 민이가 돌아오면 담임이 다녀갔다고 말해 주고 내일은 꼭 학교에 오라고 전해 달라 했다. 민이의 마음이 단숨에 이해되었다. ‘나’라도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다행히 민이는 학교에 나왔다. 방과 후에 상담실 옆 빈방에 마주 앉았다.

- 민이야, 왜 그렇게 자주 결석을 하느냐? 

- 그냥 오기 싫어서요. 

- 왜 오기 싫은데? 

- 그냥요. 

- 학교에 오지 않으면 하루종일 뭐 하는데? 

- 그냥 돌아다녀요. 시장에도 가고, 게임방에 갈 때도 있고.

 다행히 도둑질이라든가 하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지는 않았고, 나쁜 친구하고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수줍고 온순한 자세로 앉아 고분고분 대답을 한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제안을 하나 했다.

- 민이야, 학교는 그렇게 놀이터처럼 아무 때나 오고, 안 오고 하는 데가 아니야. 다니려면 잘 다녀야지. 선생님이 허락해 줄 테니 4월 한 달 학교에 오지 말고 실컷 놀러다니렴. 그러다 한 달 후에 결정하자. 학교에 계속 다닐지 학교를 그만둘지. 그때도 학교에 오기 싫으면 아예 자퇴를 하기로 하자. 그래도 중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결석하지 말고 잘 다니기로 하고. 

민이는 대답 없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 민이야, 오늘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렴.

 그때는 중학교 과정이 의무교육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퇴나 강제 퇴학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천만다행이었다. 민이는 그 다음 날부터 빠짐없이 학교에 나오고 무사히 3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민이가 졸업할 무렵이 되어 민이의 3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다. 

- 민이 학교 잘 다니고 있나요? 

- 그럼요, 결석 한번 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이후 소식을 들은 적은 없지만 살면서 가끔 민이 생각을 한다.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지. 잘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가슴이 서늘할 때가 있었다. 그때 만약 민이가 학교에 오지 않고 한 달 동안 놀면서 나쁜 일에 연루되거나 나쁜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11. 철희 어머니     

 종례시간이었다. 철희가 수업료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업료를 은행에 내는 것도 아니고, 학교 서무실(지금은 행정실이라 부른다.)에 학생이나 부모가 직접 내야 했다. 지금과 달리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라서 일 년에 4번 소정의 수업료를 내야 했다. 많지 않다면 많지 않은 금액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려운 가정 살림에서는 그것도 부담이 되어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면 서무실에서 담임에게 명단을 넘기며 납부 재촉을 하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학교 운영을 해야 하니 이해는 가지만, 담임 입장에서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수업료를 바로 내는 것을 깜빡 잊고 책상 서랍에 잠시 넣어두었다가 분실했는가 보다. 아마도 누군가 가져갔겠지만, 찾을 수가 없다. 혹시? 하고 심증이 가는 인물도 있었지만 경찰도 아닌 교사가 게다가 어린 학생들을 무작정 심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 서랍 속이나 책가방 등 주변을 좀 찾아보라 했지만 나올 리 없다. 담임으로서 매우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지난 여름방학 중의 일이다. 학급별로 하루씩 학교에 나와 학교 내외 청소 봉사도 하고 두 시간 정도 도서관의 책을 가져다 읽는 날이 정해져 있다. 우리 반 차례였다. 3분의 2 정도의 학생들이 나와 청소 봉사도 하고 교실에서 책을 읽었다. 12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책을 모았는데 한 권이 부족하다. 엄포를 놓았다.

- 책 한 권, 마저 찾아올 때까지 집에 못 간다.

한 아이가 쪼르르 어디론가 가더니 책을 가져온다. 

 순간 ‘숨겨두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모두 하교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이가 공교롭게도 수업료를 잃어버린 아이의 짝이었다. 잠시 의심하는 마음을 품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의심하는 마음을 품은 것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그 아이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도난 사고는 나로서 제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다음 날 수업료를 잃어버린 아이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항의하러 오셨는가 싶어 잠깐 긴장하기도 했는데,

- 우리 아이가 수업료를 잃어버렸다는데 사실인가 싶어 왔습니다. 혹시라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제가 일을 다니느라 아들을 잘 보살피지 못해서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다른 일에 쓰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염려가 되어서요.

- 아닙니다. 절대 그런 아이는 아닙니다. 잃어버린 것은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어머니는 구로 공단에서 일을 하느라 바쁜데도 출근을 미루고 학교에 들러 아들에 관해 묻고, 수업료를 납부하고 돌아갔다. 평생 잊히지 않는 훌륭한 어머니셨다. 아마도 철희는 잘 성장하여 훌륭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12. 내 모습 패러디     

 한 학기에 한 번쯤 나 대신 학생들에게 수업을 시켜 볼 때가 있다. 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자 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의 수업은 서투르니 그 부분을 내가 다시 보충해 주긴 한다. 

어느 아이가 나 대신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그 애 모습과는 영 다른 제스처를 쓰고 말투도 다르다. 아이들은 폭소를 터트리곤 한다. 수업은 그런대로 잘하였다. 모습이 좀 특이했을 뿐이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웃었는가 물어보았다. 그 아이가 내 모습을 흉내 냈단다. 그 좀 특이한 말투와 제스처가 나였단 말인가. 나는 그게 내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구나. 

갑남을녀 중 80% 정도가 자신을 미남미녀로 생각하고, 선생의 80% 정도가 자신이 ‘수업을 아주 잘한다’고 생각한다지 않는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반성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든다. 가끔은 그런 착각 속에서 살아갈 힘 또한 얻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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