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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Feb 01. 2022

분홍색 니트

아들 둘을 키우며 때론 이러다 내가 여자인걸 잊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들과 그로 인해 높아진 나의 목소리가 우리 집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외출하려고 옷장 문을 열고 분홍색 니트에 설레는 나를 발견하곤 실은 나도 여성스러운 여자임을 느낀다.

40대 중반을 향해가지만 여전히 나는 핑크색이 좋고 반짝이는 보석도 예쁜 꽃도 좋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내 나이 때 몇 살이었지 생각할 때가 많다. 특히나 예쁜 옷이 좋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할 땐 더더욱 내 나이 때 엄마를 떠올린다.

40대 중반 지금의 나와 나이가 같을 때, 그때도 기억 속에 엄마는 뽀글 머리에 넉넉한 아줌마였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흐려졌다 해도, 나와 엄마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겠고, 나와 엄마의 삶이 다르다는 것도 알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은 엄마의 맞벌이로 가득 차 있던 힘든 삶이 짠해지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언젠가 내가 고등학생일 때 계모임이 있던 엄마는 퇴근 후 늦게 참석하며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아서 아빠 점퍼를 입고 나선적이 있다. 어린 내 눈에도 그런 엄마가 짠해서 대문 밖까지 마중을 하며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골목길 아빠 점퍼를 입고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그 시절 엄마는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었을 때인데, 남편 옷을 입고 나선 속상함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커서 애써 속상함을 외면했을 것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무뚝뚝한 경상도 딸인 나는 살갑지도 않고 효도도 모르고 살지만 종종 옷은 사드린다.

예쁜 옷을 나만 입기엔 엄마의 삶이 안쓰러워서 나름의 옷 효도라고나 할까.

지난날 엄마의 고생을, 젊음을 돌이 킬 수도 없고, 아빠 점퍼를 입고 가던 엄마에게 그 순간 예쁜 새 옷을 사줄 순 없지만  가끔씩 사다 드리는 옷으로 엄마의 삶을 위로하는 나만의 위로 법인 셈이다.


어릴 땐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예쁜 거에 대한 관심이 어지는 줄 알았다.

최근에 우리 집 둘째가

"엄마, 할머니도 여자였어?"

라고 놀란 듯이 물은 적이 있는데 나도 딱 그랬던 것 같다.

나이 들면 여자가 아닌 또 다른 성별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예쁜 거를 좋아하는 마음이 미해지던가. 

그런데 내가 나이를 먹고 보니, 몸은 나이 들어도 언제나 분홍색이 좋은 소녀가 내 안에 있다. 

늙지 않는 소녀. 

분홍색 니트를 꺼내 입고 큐빅이 반짝이는 귀걸이를 끼고 거울을 보며 오늘도 그 소녀를 만난다.

더 많이 나이 들어서 주름 자글자글 해지고, 지금 우리 아들들 같은 손주가 생겨도 여전히 난 분홍색 옷이 좋겠지? 예쁜 분홍색 옷 입고 맑게 웃는 귀엽고 다정한 소녀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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