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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Nov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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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연구실이 있는 나수정의 집으로 이동해야 했다. 서울로 가는 풍경은 인간이 사라졌던 지난 40년간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무너진 건물, 방치되어 을씨년스러워진 아파트, 잡초에 뒤덮여 망가진 도로 위에는 끈질기게 살아남은 야생동물들이 간간이 보였다. 강력한 태양풍에도 살아남은 그들은 인간이라는 위기를 또다시 만나고 말았다. 도착한 나수정의 집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파랗게 잔디가 깔리고 아름답게 정원이 가꿔진 2층 건물이었다. 예전에 땅 위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었겠다 싶었다. 지하차고에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가자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마루야 오래 기다렸지. 보고 싶었어. 얘는 라이카야. 이제부터 우리 친구니까 잘 지켜줘야 해. 알았지?” 

나수정은 나를 개에게 보여주고는 말했다. 

“우리 마루는 아주 특별한 개야. 너를 위협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돌봐줄테니 걱정 안 해도 돼. 30년 넘게 나와 함께 살고 있어서, 척하면 척이야. 나보다 더 똑똑하다니까!”     



40년간 비워뒀던 서울은 반쯤 부서진 상태였다. 도심과 거주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건축하면서 도시 기능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태양 폭발 이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고 예상했던 동물들은 꽤 많이 살아남아 도시를 차지했다. 그래서 서울 한복판에도 다양한 동물들이 가끔 출몰한다. 어느 날 나수정이 외출에서 돌아오면서 분홍색 뭔가를 들고 왔다. 

“뭐야? 그건?”

“죽은 아기 노루야. 예쁘지? 지상에 나오기 전에는 세상이 이렇게 예쁠줄 몰랐는데, 죽음마저 이렇게 아름답다니! 아기 고라니가 잠든 것 같이 너무 예뻐서 주워왔어. 불쌍하잖아. 이제 태어난 지 기껏 서너 달 됐을 텐데. 얘도 그냥 죽으면 억울하잖아. 지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인간들이 남긴 물건들을 먹으면서 자라서 뼈에 금속과 플라스틱이 섞여 있거든 그래서, 뼈에 색이 있거나 반짝거려서 예쁘거든 머리뼈를 벽에 걸어둘까 해서 가져왔어. 썩기 전에 빨리 손질해야겠다.” 

“그걸 걸어 둔다고?”

충격받은 것은 나뿐인 듯 하다. 골든 리트리버 마루는 죽은 고라니 냄새를 맡아보고 싶어서 평소보다 더 신이 났다. 나수정은 황급히 싱크대로 가서 노루의 배를 갈라 썩기 시작한 내장을 꺼내고 조심스럽게 가죽을 벗겨낸 다음 능숙한 솜씨로 관절에 칼을 넣어 다리와 발굽은 한마디씩 잘라냈다. 

“아기라서 발굽 위쪽 다리털도 너무 부드럽다. 열쇠고리로 쓰면 예쁘겠는데!”

이어서 얼굴 가죽을 다치지 않게 잘 벗겨낸 다음 벌겋게 드러난 아기노루의 가엾은 얼굴 근육을 깨끗하게 뼈에서 발라냈다. 솜씨가 너무 깔끔해서 마치 아침 식사 준비라도 하는 듯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뇌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후두부를 조심스럽게 절개해서 깔끔하게 뇌를 꺼내고 마침내 노루의 두개골만 남도록 정리했다. 

“태양 폭발 이전의 동물들은 이렇지 않았어. 뼈가 그냥 흰색이었대. 그런데, 칼슘이 태양에서 오는 방사능과 매우 잘 결합하기 때문에, 쉽게 뼈가 약해졌지. 동물들은 튼튼한 뼈 대신 유연한 플라스틱 뼈를 만들기 시작한 거지. 덜 튼튼하지만, 유연하고, 방사능에도 강하지. 그리고 봐 이렇게 흰 뼈 안에 투명한 여러 색의 플라스틱 결정이 박힌 것처럼 변한 거야. 너무 예쁘지 않아?”

아직 피가 벌겋게 묻은 노루의 두개골을 들어 보이면서 물었다.

“좀 징그러운데...”

“원래 예전부터 사냥꾼들은 사슴 머리든, 곰 머리든 집에 걸어뒀어. 잘 말린 다음에 벽에 걸면 예쁠 거야. 조명을 설치해도 되고.”

나수정 말이 맞았다. 안에 조명을 넣어서 벽에 건 고라니의 머리뼈는 여러 색으로 빛나서 예뻤다. 그러나, 볼 때마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꺼내던 모습이 생각나서 왠지 소름이 돋았다.           



나수정은 지하도시 #1 우호 보금자리에 있을 때부터 연구소에서 바이오 컴퓨터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태양풍이 강력해서 정상적으로 첨단 기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주요 시설을 지하로 차폐했다고는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기술은 퇴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바이오 컴퓨터 개발이다. 특히나 정치인들은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을 매우 불안해했는데, 때문에 군사용으로 새나, 돌고래 등을 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전 실패 비율이 높아서 태양풍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바이오 컴퓨터, 즉 오가노이드 컴퓨터 개발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 번역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빨리 연구를 시작해야겠어. 그러려면 네가 몇 가지 도와줘야 해. 연구소 생각이 나서 힘들 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거야. 뇌 영상 촬영과 채혈 정도만 해주면 돼. 딱 한 번이면 되니까 괜찮을거야.” 

“채혈과 영상 촬영 정도는 익숙해.”

우리는 집과 연결된 지하 통로를 따라 <화성기계>라고 적힌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여기가 우리 회사의 메인 연구실이지. 나는 연구실에서 나고 자라서 여기가 더 익숙해. 배양접시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뇌 조직을 배양해서 오가노이드 컴퓨터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 지금 같은 시대에는 저전력이면서 태양풍의 영향을 적게 받는 바이오 컴퓨터는 필수적인 기술이지. 지금까지 인공 뇌 조직으로 고성능의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드는데 문제가 있었는데, 너 덕분에 문제의 실마리를 찾았어. 네가 가져온 번역기와 네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럴수만 있다면, 갈루아도 너에게 고마워할거야.”

실험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살던 연구센터와 비교하면, 실험동물도 없고, 훨씬 더 많은 기계장치와 사람들이 있었다. 실험동물들이 무수히 갇혀서 차례만 기다리던 연구센터와는 너무 달랐다. 다행이었다. 


며칠 후, 나수정이 내 유전자 분석결과를 들고 돌아왔다. 

“역시 너는 <ARHGAP 11b> 유전자가 삽입된 개체였어. <아르갭 11B> 유전자는 뇌 신피질 발달을 촉진해서, 인간의 뇌처럼 발달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아르갭 11b>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네가 다른 햄스터보다 똑똑했던 거야.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뛰어났고, 이 번역기로 인간처럼 말할 수 있었던 거야. 보통 햄스터였다면, 번역기가 작동한다고 해도, 너처럼 매끄럽게 대화할 수는 없는 거지. 어떻게 보면 너는 우리 아버지의 연구 성과이기도 했던 거야.”

“너의 아버지라면, 나부진 소장 말하는 거야?” 

“맞아. 역시 아버지의 연구는 접근부터 달랐다고 볼 수 있지. 여러모로 존경할만한 분이야. 신을 원망해서 신이 되고 싶었던 과학자라..... 아버지는 인류가 지하로 들어가기전, 유명한 공학자였다고 들었어. 엽록체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아서 화성으로 이주할 수 없었지. 그런데, 지하 보금자리로 들어가기 직전에 엽록체 유전자가 발현된 녹색 딸이 태어난거지. 신의 장난에 놀아났다고 생각이 들었겠지. 아마 아버지는 #2 보금자리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기술이 사람을 신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신이 되기로 한 과학자의 연구에는 한계가 없지. 그래서, 모든 윤리적인 문제를 뛰어넘어서 너같이 똑똑한 쥐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지. 신은 갈루아와 너, 그리고 나를 어쩌면 운명적으로 엮어놓은지도 모르겠고.”

“나도 연구소에 있을 때, 몇 번 나부진 소장을 본적 있어. 왜 항상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는지 알겠어”

“이제 작동방식을 알았으니까, 마루가 말을 할 수 있게 실험을 해볼 수 있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일을 이룰 수 있게 된 거야.” 

나수정은 사랑스러운 듯 골든리트리버 마루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마루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만약, 네가 말을 못 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

“음... 두려움을 이겨내야겠지......” 

대답은 했지만, 무척이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뒤, 언제나 천사처럼 웃고 있는 골든 리트리버 마루는 임신을 했고, 새끼를 낳기 직전에 연구소로 데려갔다.

“마루에게 번역기를 심는게 아니었어? 마루가 왜 임신을 한거야?”

“마루는 번역기를 심어도 <아르갭 11b> 유전자가 없어서, 너처럼 원활하게 대화하기 힘들어, 마루가 임신한 새끼는 <아르갭 11b> 유전자 덕분에 훨씬 똑똑하게 태어날 거고, 어릴 때부터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 하다보면 더 똑똑해지겠지, 라이카 너처럼.”

거의 한 달이 다 지나서 나수정은 새끼 강아지를 데려왔다. 간간히 마루와 새끼의 소식을 들려줬지만, 무척이나 궁금하던 차였다. 새끼 강아지는 이미 번역기가 심어져 있었다. 

“벌써 이렇게나 자란 거야? 너무 귀엽다. 마루는 언제 와?”

“얘가 마루야.”

“아니, 엄마 마루는 언제 오냐고?”

“이 애가 그 엄마 마루 맞아.”

“아니, 다 큰 리트리버가 갑자기 새끼가 되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알 수 없는 대답만 하는 나수정에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마루는 일곱 살 생일에 우호 보금자리 연구소에서 선물 받은 강아지였어. 나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일곱 살 아이의 발달을 연구하기 위해서 준 실험도구 같은 거였지. 그런데, 나는 마루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렸지. 19살 때 처음 마루가 죽었는데, 죽은 마루의 체세포를 복제해서 살려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계속 마루랑 지내온 거야. 복제된 개체는 수명이 좀 짧아서 지금까지 4~5번 복제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

대수롭지 않은 듯 설명했으나, 차마 진짜 마루의 행방을 묻기가 두려워졌다. 

“그럼, 마루가 마루를 임신했던 거야?”

“맞아, 가장 완벽한 복제 방법이지. 다른 DNA가 절대 섞일 수가 없어. 이제는 너 덕분에 마루랑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

아직은 아기 마루가 말을 못 알아듣기를 빌었다. 탄생의 비밀이 비밀로 남을 수 있기를.



나수정은 자신과 같은 녹색피부의 소년은 만나지 못했지만, 운명적으로 라이카를 만났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연구도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아이디어 덕분에 내 연구가 빛을 보겠군. 아버지가 착각한 것이 있지. 우리가 신이 될 필요가 없어. 신의 도움이면 족하지. 지금까지 오가노이드 뇌를 만들려고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어. 이미 신이 우리에게 쥐어줬는데도 활용을 못 하고 있었을 뿐이지. 신이 준 완벽한 자연 지능에 <아르갭 11b> 유전자만 추가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나수정의 실험은 그때부터 극비에 부쳐졌고, 본격적인 동물 실험이 시작되었다. <아르갭 11b> 유전자를 삽입한 동물들을 키우고 그 동물들에게 무 번역기를 심은 다음 언어발달 정도가 좋은 개체끼리 교배를 한 뒤 똑똑한 개체로 개량해 나갔다. 실험이 성공할수록 연구소는 끔찍한 지옥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똑똑해진 동물들의 아비규환과 절규로, 이후에는 적출된 다양한 동물의 뇌가 컴퓨터가 되어 연결되었다. 이 지옥같은 풍경이 이후에는 용량이 커진 오가노이드 컴퓨터에 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어려워 두개골이 열린 채로 살아있는 컴퓨터가 된 동물들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마치 다양한 용량과 기능의 반도체와 같이 작동했다. 작은 동물들의 민첩한 뇌는 작은 휴대용 기기를 위해서, 고용량의 중대형 동물들의 뇌는 서버나 고성능 연산에 이용될 방법을 연구했다. 점점 더 작은 동물들의 뇌를 고도화해서, 고성능의 작고 효율이 높은 동물들을 똑똑하게 만들어 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실험실에서는 라이카같이 똑똑한 개체를 만들 수 없었다. 

‘실험 동물들이 라이카처럼 똑똑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라이카처럼 똑똑해진다면, 작고 휴대 가능한 고효율의 생체 컴퓨터가 될 수 있을 텐데. 라이카는 실험실 환경에 있는게 아니라서? 이럴 때는 역설계로 답을 얻는게 빠를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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