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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Feb 24. 2024

[호스텔 Talavera] 길위의 선 여행자들

장기 숙박할 만한 숙소의 조건

호스텔 탈라베라에 도착했을때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익숙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할일없이 일찍도착한 여행자가 체크인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곳은 소음 으로 가득한 삼거리 도로 사이에 놓인 옥상이었다.  이 숙소는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희안하게도 길위에 있었다. 큰 대로가 Y자로 갈라지는 지점에 덩그라니 놓인 삼각형의 좁은 땅위에 있었다. 

마치 길위에 놓인 여행자를 상징하듯, 우리에게 어느쪽이든 선택을 종용하듯 그렇게 길 위에 있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도로 사이에서서 쉴새없이 지나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침내 길 위에 선 여행자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았다. 제대로 찾아왔다.     

 

오래 머물만한 가난한 여행자들의 숙소를 구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장기체류하는 여행자가 있을 것, 

숙소에서 일하는 여행자가 있을 것, 

현지인 들이 숙박할 것, 

장기체류하는 현지인들이 있을 것. 

주방이 있을 것.

호스텔 탈라베라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한눈에 봐도 여행자로 보이는 앳된 금발 여성이 브라만 입고 숙소 이곳 저곳을 청소 하고 있었다. 


이곳은 가난한 여행자들의 숙소의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외국인 여행자만 있는 숙소는 저렴한 숙소가 아닌 경우가 많고, 현지인만 있는 숙소는 저렴하지만, 위험하거나 서비스가 나쁜 경우가 많았다. 이곳은 외국인과 현지인이 자연스레 섞여있어서, 저렴하고, 서비스가 좋은 곳이라고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현지인까지 장기투숙중이면 이 도시에 이보다 저렴한 숙소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꼭 주방이 있어야 한다. 주방이 없는 숙소는 가난한 여행자들의 숙소라 할 수 없다. 매번 음식을 사먹는 것이 여행자에게 가장 큰 사치이기 때문이다. 잘 정리된 주방을 보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이곳에서 쫒기지 않고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처음 부터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 탈라베라의 사람들

 이곳의 호스트는 무료 숙박을 구하는 여행자들 중에서도 사랑스럽고 상냥한 알리시아를 잘 뽑은 것 같았다.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밖에 된지 않았다는 알리시아는 벌써 이곳에서 요가를 하고,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었다. 거기다 알리시아는 여기서 거의 유일하게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할 수 있어서 내 통역이 되어주었다. 두 언어가 가능한 다른 여행자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만나지 못했다.      

이곳에는 역시 4달 동안 장기 체류한, 아니면 앞으로 묵을 현지인 청년도 해수스도 있었다. 부모님이랑 싸워서 집을 나왔다고 한다. 일때문에 장기체류하고 있는 목수 라몬과, 영어가 되지만 바빠서 말붙이기 어려운 매니저 비토르도 있었다.  이곳의 구성원을 소개하는 이유는 내가 외국인들의 이름을 매번 까먹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다른 식구가 있는데, 아직 내게는 곁을 내어주지 않는 밀크라고 하는 작은 개다. 말통하지 않는 이세계에서 오히려 말이 통하는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눈을 떠서, 오늘 어딜가야할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옥상으로 올라가서, 집에서 부터 고이 모셔온, 높은 고도때문에 빵빵해진 커피믹스를 타먹고 지나가는 차들 사이 갈림길에 그저 서 있었다. 어디로 갈지는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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