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나를 만든 날들
마음속 선입견이라는 거울을 부수는 데 삼십여 년이 걸렸다.
척 보면 안다. 생각해 보면 오만한 단언이었다. 한때 블랙코미디로 유행했던 이 말은, 어느새 내 안에서 수많은 판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 시선은 익숙하지만 흐릿하고, 편리하지만 때로 왜곡된 상을 비춘다. 오래도록 드리운 그림자가 된 마음속 편견은 수십 년을 살아온 나조차도 늦게야 실체를 깨닫게 했다.
눈빛 하나, 목소리의 높낮이, 옷차림 몇 가지만으로 타인을 속단했다. 혼자 밥을 먹으면 외로운 사람, 말을 아끼면 냉소적인 사람이라 단정했다. 나와 다른 표현을 쓰는 이를 틀린 사람으로 치부했다. 사람을 너무 쉽게 요약했다. 한 권의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는 경솔함을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어떤 이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미 다 안다고 믿었다. 삼십 대 중반,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김 대리가 있었다. 말수가 적었고 회식에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점심시간이면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보다는 늘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그를 소통 불가능한 유형으로 분류해 버렸다. 김 대리는 정말 차가워 라고 동료가 수군거릴 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무표정한 얼굴, 고개를 숙이고 걷는 모습,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행동 패턴까지. 모든 것이 내 섣부른 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처럼 보였다.
어느 주말, 복지시설인 아이들의 집에서 뜻밖에 김 대리와 마주쳤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무릎을 꿇어 대화하며 손수 만든 가죽 지갑을 아이에게 건네며 웃는 모습은 사무실의 누구와는 달랐다. “이 색깔, 너랑 잘 어울리네.” 눈높이를 맞춘 그 말은 낯설 만큼 다정했다. 무엇인가로 머리를 맞은 충격으로 잠시 숨을 멈춰야 했다. 그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주변이 없고,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할 때는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3년째 이곳에서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입견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외면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던졌던 수많은 섣부른 말들이 보였다. 내가 쌓아 올린 판단들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깨달았다. 내가 외면했던 진실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타인을 향한 견고했던 왜곡된 거울은 결국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음을 깨달았다.
편견은 이렇게 태어난다. 나무 한 그루로 숲 전체를 상상하는 것과 같다. 별 하나로 우주를 읽으려는 조급함이다.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이 통찰로 이어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희박한 확률에 기대어 진실을 가려버리는 것은 더 큰 오류다. 이렇게 피어난 선입견은 날이 갈수록 단단해져 보이지 않는 오해의 벽을 쌓는다.
사람은 단편으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천 개의 얼굴을 지닌 다면체와 같다. 침묵이 반드시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고 거리두기가 마음의 폐쇄를 뜻하지 않는다. 삶의 맥락이 그 사람의 표현을 둘러싼다. 하루의 무게가 말투를 바꾸고 지나온 세월이 행동을 결정한다. 상처와 회복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깊이를 만든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느리고, 어렵고, 고요한 과정이다. 첫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실체를 보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다정한 침묵과 어색한 표현, 단절된 말들 사이로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서서히 드러날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편견 공장이 쉼 없이 돌아간다. 뉴스 한 줄로 세상을 재단하고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대화로 진실을 확신한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다 아는 것처럼 전하고 SNS 사진 한 장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만들어 놓은 판단의 틀에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든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한낱 오인으로 판명되었을 때, 가장 가까웠던 관계가 가장 먼 사이로 돌변하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관계가 의외의 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제 섣부른 판단이 고개를 돌려 할 때마다 한 문장을 조용히 되뇐다. 이 사람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 다짐은 나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게 한다. 빈자리에 비로소 진짜 사람이 천천히 들어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김 대리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건네고 싶다. 선입견을 걷어낸 자리에서 말이다. 당신을 제대로 보지 못해 미안했다고. 당신의 따뜻함을 알아보지 못해 죄송했다고. 당신이 건네는 작은 미소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고.
우리는 결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은 내 잣대로는 번역할 수 없는 고유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 보려는 노력이 있다. 다가서려는 용기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작지만, 숭고한 몸짓이 아닐까.
결국, 한 가지를 배웠다. 오해는 상대를 몰라서 생긴 게 아니라, 제대로 보기 전에 이미 안다고 믿어버린 선입견 때문이라는 것을. 진실은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다. 기다림 앞에서 오늘도 내 안의 낡은 거울을 내려놓는다.
척 보면 안다고. 아니다. 척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