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택시, 이제는 내 차례다

조용히 나를 만든 날들

by 가슴속호수

태어난 그 순간, 인생이라는 택시에 올랐다. 목적지를 묻지 않았고, 대답을 듣지도 못했다. 창밖 풍경은 눈부셨고, 시동은 이미 걸려 있었다.

종착지가 어디인지,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움직이는 차 안에서, 멈추지 않는 시간을 실감할 뿐이었다.

택시의 요금은 만만치 않았다. 돈뿐 아니라, 시간과 노력, 실패와 후회까지 얹어 청구되었다. 고통을 견디며 얻은 통찰은 다시 다음 길로 나아가게 하는 작은 표가 되었다. 좌절과 눈물 끝마다 새로운 길이 있었고, 그렇게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유년 시절은 부모님의 품에서 시작됐다. 택시는 마치 방탄유리를 두른 자가용 같았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쏟아져도, 안에서는 늘 따뜻한 물김이 맴돌았다. 아버지의 넓은 등판, 어머니의 손등에 얹힌 약국 냄새. 세상의 거칠음을 모른 채, 봄 햇살처럼 포근한 나날을 지났다.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법인택시에 몸을 실었다. 규칙적인 노선, 예측 가능한 요금표, 대신 방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정해놓았다. 회사라는 차창 너머로 흐르는 풍경은 늘 닮아 있었다. 반복되는 출근길, 복사된 회의록, 식은 커피 냄새 속에서 점차 붕어빵 같은 삶에 길들여졌다. 그러다 문득, 한 줄기 바람이 차창 틈으로 스며들었다. 이름 모를 욕망이 가슴을 흔들었다.

그 바람을 따라 또 다른 택시에 몸을 실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도시.

풍경은 달랐지만, 길은 늘 낯설었다. 퇴근 후 쓸쓸한 벤치에서 먹던 편의점 삼각김밥,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유리창에 비친 지친 얼굴. 낯선 공간 속에서 다시 나를 배워갔다.

어떤 길은 무심히 곧았고, 어떤 길은 가파르게 꺾였다. 한밤중의 터널을 지나던 시간엔, 앞을 비출 불빛조차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은 존재했다. 좌회전을 늦추면 우회전이 있었고, 돌아가는 길엔 새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은 항상 그렇게, 멀어져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어느 날, 개인택시를 몰고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그의 말투, 그의 표정, 그의 발걸음엔 스스로의 운명을 조율하는 사람이 지닌 여유가 담겨 있었다. 자유. 그 단어가 나를 이끌었다.

마침내 나도 나만의 택시에 올랐다.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땐 어깨가 무거웠다. 방향을 잃으면 누구도 탓할 수 없었고, 조수석은 늘 비어 있었다. 함께 탔던 누군가는 중간에 내렸고, 누군가는 목적지를 속인 채, 나를 엉뚱한 길로 이끌었다. 비싼 대가였다. 신뢰는 거리보다 멀고, 속도보다 느리게 배워졌다. 하지만 그 실패조차도 나만의 표지판이 되어, 다음 길을 밝혀주었다.

가끔은 내비게이션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타협 속에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신호가 울렸다. ‘이 길이 아니다.’ 외면했던 그 울림은, 늘 가장 깊은 후회를 남겼다.

자가용을 타고 태어난 친구들도 있었다. 부러운 시절도 있었다. 원하는 길을 망설임 없이 달렸고, 피곤하면 쉬었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가속페달을 놓는 순간, 생계라는 단어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비 오는 오후의 신호대기 중에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나무는 잎을 한 장씩 떨구며 계절을 넘기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생의 주행거리. 그 길 위에서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었을까.

인생은 짧다. 동시에 길다. 지나치게 달려온 탓에 빠르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수없이 돌아보지만,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차를 탔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성장했느냐였다.

황혼의 길목에 선 지금, 경제적 자유는 얻었다. 정신적 자유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직장은 선택했지만, 진정한 업(業)은 아직도 흐릿하다.

그래도 지난 여정은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다. 유쾌하게 지불한 택시비 속에는 따뜻한 동료, 낯선 인연, 무심한 친절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미소와 말 한마디는 지금도 내 마음의 백미러에 남아 있다.

어느 날, 택시는 조용히 서점 앞에서 멈췄다. 우연히 펼친 책 한 권, 종이 냄새와 함께 정신의 숨구멍이 열렸다. 문장 하나에 멈춰 읽고, 문단 하나에 울컥했다. 그제야 알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진짜 여정은 지금부터라는 것.

글을 쓰며, 내 업을 찾아가는 중이다. 운전석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의 시동을 건다.

인생이라는 택시는 지금 황금빛 노을 속을 가르고 있다. 저 하늘 끝, 무지개의 마지막 조각에 닿을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미소 짓고 싶다. 이 길이 내 길이었다고, 모든 순간이 하나의 선율이었다고. 사랑했고, 달렸고, 결국 나답게 살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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