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니다

조용히 나를 만든 날들

by 가슴속호수

진정한 가치는 타고난 배경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난다. 부모의 얼굴도, 집안의 형편도 미리 정할 수 없는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어떤 이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풍요의 그늘에서 자란다. 어떤 이는 흙수저를 쥐고 첫 숨을 들이마시며 궁핍의 가장자리에서 발버둥 친다. 세상은 시작부터 다른 빛깔의 도구로 사람을 구분하려 든다.

젊은 날에는 세상이 정한 색깔에 짓눌렸다. 금도 아니고 흙도 아닌, 새벽빛처럼 모호한 지점에서 방황했다. 그렇다고 은수저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삶이란 주어진 도구로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빚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삶의 도공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흩어져 속절없이 무너지는 날도 많았다. 두 손으로 가만히 쓸어 모아 다시 다독이곤 했다. 뜻밖의 어려움에 뒤틀릴 때면 뜨거운 불가마 속에 자신을 밀어 넣어 더 단단하게 구웠다. 너무 여려 산산이 깨어질 때는, 차라리 이름 없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서러움에 젖었다. 마음속 작은 도공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불완전해도 다시 흙을 만지는 떨리는 손길 속에 희망이 살아 숨 쉬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흙수저를 든 자는 평생 그대로일 뿐이라고. 이 시대는 계급을 도구에 비유하며 사람의 가치를 재단한다. 물려받은 배경과 조건으로 인생의 한계를 정해버리는 냉혹한 시선이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은 그 이후에 펼쳐진다. 배우는 말투, 품게 되는 생각,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태어난 집안을 넘어선다. 처음 쥔 도구의 재질은 출발선의 표식일 뿐, 도착점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교만할 이유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이라 절망할 까닭도 없다.

현실의 거친 창문 너머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부유하게 태어났으나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 가난했으나 자신의 길을 개척해 세상에 빛을 더하는 이들. 타고난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마주하는 자세.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가꾸느냐에 따라 삶의 빛깔은 달라진다. 금도 흙도 아닌, 오직 고유한 이름이 새겨진 것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거칠었으나, 하루하루 정성을 더할수록 은은한 광채를 띠었다. 따뜻한 격려에 귀 기울이고, 쓰라린 실패를 끌어안고, 믿어주는 이들의 눈빛을 기억하며 다듬었다.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떠먹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것을 완성했다.

이제 분명히 보인다. 진정으로 빛나는 것은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소중히 가꾸는 손길이라는 것을. 반짝이는 삶이란 타고난 상황의 덕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존재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완벽히 빛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조금은 거친 질감으로 불완전한 모습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여정이다. 수없이 물레를 돌리고 불을 지피며 때로는 깨진 조각을 모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다.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꿋꿋함,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빛이 희미해지기도 하고 굳은살 박인 손끝이 아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인생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해 가는 과정 그 자체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쟁취해 나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오는 날도 있다. 정성껏 빚는 것이 한순간에 부러질까 봐. 애써 굽는 삶이 예기치 않게 뒤틀릴까 봐. 두려움이 오히려 새로운 힘이 되기도 한다. 새 흙을 찾게 하고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며 두 손으로 더욱 힘주어 누르게 한다. 삶을, 꿈을, 존재의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금빛 배경이든, 스스로 일구어낸 거친 흙이든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과 땀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찬란하게 빛난다.

이 사회가 금수저와 흙수저로 사람을 재단하는 동안, 묵묵히 자신만의 수저를 빚는 사람들이 있다. 재질이 아닌 그것을 만드는 손의 따뜻함이 진정한 가치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한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은 외롭고 고단할지라도, 끝에 피어나는 희망의 빛은 별들이 수놓은 밤하늘처럼 마음을 적신다. 떨리는 손끝으로 삶을 다듬는다. 눈부시게 반짝이지 않아도 좋다. 단단하면 충분하다.

오늘도 고유한 수저를 빚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더 나답게. 세상이 정한 계급의 기준을 넘어서는 고유한 결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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