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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Aug 31. 2024

어머니와 호박죽

인생택시

37세부터 46년 동안 남편 없이 홀로 사시며 

5남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남몰래 병만 키우셨나 봅니다. 

골다공증, 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 어지럼증 그리고 치매. 

어찌하여 장한 어머니상 대신 병만 받으셨단 말입니까. 

괜스레 눈물만 납니다.     


심해지는 당뇨병으로 병원에 자주 입퇴원을 반복하고 

오락가락하는 치매 증상에 어머니는 힘들어하십니다. 

스스로 치매요양병원을 택하십니다. 


1여 년 사이에 건강이 호전되어 

죽기 전에 아들과 살아보고 싶다고 합니다.

 병원을 퇴원해서 함께 지냅니다. 

좋아하십니다. 아들은 웃음을 찾습니다.     


어머니는 방을 정리한 며느리에게 호통 칩니다. 

빨래한 옷이 어디 있냐고. 화장지 훔쳐갔다고.

 아들이 찾아 나섭니다. 

잃어버렸다는 물건들이 서랍장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어 언제 갔다 놨지.”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방에 들어가기 겁이 난 아내는 

청소를 나에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방을 치웁니다.

젊은 시절 깔끔하게 정돈된 어머니 방을 회상합니다. 

인지 능력이 감퇴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슬픔이 밀려옵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합니다. 

아내의 정성에 지병 있는 어머니와

 우리의 식탁 메뉴가 다릅니다. 

자주 우리 반찬에 눈길을 줍니다.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너희가 먹는 거 다 달라고 하십니다. 드립니다. 

틀니가 불편하다며 빼고 드시니 이가 없어 못 드십니다. 


화장실에서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면대에 발을 올려놓고 씻으시다가 들킨 모양입니다. 

힘도 없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묘기로 발을 씻는 게 

황당하였지만 달래기만 했습니다. 

말 안 듣고 고집불통으로 변해버린 어머니가 걱정됩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넘어져 어깨뼈가 골절되어 

수술하고 한 달 이상 입원까지 했습니다. 

아들은 우매함을 깨닫고 

목욕의자를 사드리며 편하게 씻으라 했습니다.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웃음을 찾습니다.     


어머니는 아내가 싫은 모양입니다. 정신이 온전할 때는 

며느리에게 용돈까지 주면서 최고의 시어머니였는데 

지금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외출하는 것도 싫고, 방 청소하는 것도 싫고, 

식단 준비하는 것도 싫고. 둘 사이 냉기에 

아들은 슬퍼합니다. 아들만 찾는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식탁에 갈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좋아하는 빨간 지팡이를 짚고 가야 합니다. 

보행기를 끌고 문 밖 출입을 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못 다닙니다. 

어쩌다 성공하면 어김없이 길을 잃어버립니다.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지원받은 

위치추적 시계를 채워 드립니다.      


개, 돼지처럼 사육하느냐며, 

매일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치매 걸린 어머니의 말씀에 

아들은 가슴이 메어 집니다. 

차를 타고 주간보호센터로 갑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갑니다.      


어린애처럼 좋아합니다. 

그곳 생활이 신나서 이야기하십니다. 

잠시나마 기뻐해 봅니다. 그러다가 탈이 납니다. 

어느새 나이 들어 매일 타는 차량 이동이 힘들었나 봅니다. 

식사도 못합니다. 병원도 다닙니다. 다행히 회복해 갑니다. 

평생 죽이 싫다고 평소에 드시지도 않던 죽을 달라고 합니다.

 흰 죽을 끓입니다. 드시는 게 신통치 않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죽을 삽니다. 여러 가지 맛을 봅니다. 

이제는 죽 맛을 아셨나 봅니다.

 호박죽만 달라고 시위를 합니다.      


쇠고기죽도 있습니다. 누룽지닭백숙도 있습니다. 

통단팥죽도 있습니다. 전복죽도 있습니다. 

야채죽도 있습니다. 흑임자죽도 있습니다.  

골고루 영양분을 드시게 하고 싶은데 

호박죽이 맛있다고 힘없는 주먹을 쥐고 

팔을 치켜들어 힘차게 노래만 합니다.

 “호박죽, 호박죽, 호박죽.”      


기력을 평생 자식들에게 쏟아부어

 몸과 마음이 지쳐서인지 

요즘 들어 식사를 못하시는

 치매 걸린 어머니의 시위 섞인 투정입니다. 

아들만 보면 주먹 쥔 손을 들고 어린애처럼 

보채는 어머니 외침에 그 모습이 밝아서인지 

아들은 피식 웃으며 잠시나마 웃음을 찾아봅니다.      


줄어드는 식사량에 

온갖 음식을 드려보지만 그대로입니다. 

병원도 가기 싫다고 하십니다. 

호박죽 드시는 양도 줄어듭니다. 

더 이상 호박죽 외침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좋아하시던 토란죽을 아들이 떠 먹여 드립니다. 

그러기를 사나흘 지나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들은 그것이 신호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병원 가서 링거 영양제를 맞았으면 아직까지 살아계셨을 겁니다. 

“호박죽, 호박죽, 호박죽.” 

시위 섞인 투정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한자리에서 두 개씩 드셨던 

어머님 모습을 회상하며 나의 몽매함을 한탄합니다.      


괜스레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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