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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Sep 10. 2024

과속의 그림자

인생택시

속도의 유혹은 달콤했다. 대가는 언제나 치명적이었다. 무모한 과속은 지금도 그림자처럼 내 삶에 따라다니고 있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시골길을 달리던 중, 문득 두 번의 대형 교통사고가 떠올랐다. 그날의 공포와 충격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창원에 있는 회사에 입사해 겪었던 일이다.


 창원은 방위산업 계획도시로, 공장과 상가, 주택 단지가 질서 정연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도로는 마치 비행기 활주로처럼 넓고 한적했으며, 차량 통행은 드물었다. 영업과장이 나에게 운전을 가르쳤고, 면허를 딴 후 그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과속에 익숙해졌다. 과장은 넓고 빈 도로 위에서 질주하는 것을 즐겼고, 나 역시 그의 습관을 닮아갔다.


어느 날, 과속 단속을 피해 경찰차와 추격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영업과장의 지시대로 엑셀을 끝까지 밟고 달아났다. 사이렌 소리는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 짜릿한 쾌감은 온몸에 아드레날린을 퍼뜨렸다. 쾌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은 차량 번호를 추적해 회사로 찾아왔다. 무모한 행동의 대가로 감봉 징계를 받고 경위서를 써야 했다. 그때 나는 그 일이 그저 순간적인 일탈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내 인생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한 신호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건이 있은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영업과장과 동료들을 태우고 창원에서 마산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처음 가보는 신설 도로였다. 일부 구간은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의 도로’라 불리던 곳, 사망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대화에 몰두하며 잠시 한눈을 팔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로가 급커브로 변했다. 속도를 줄일 틈도 없이 차량이 도로 위로 유난히 높게 튀어나온 맨홀에 부딪혔다. 핸들을 꽉 쥔 채 공중으로 솟구친 차량은 인도를 지나 하천으로 곤두박질쳤다.


 전복은 면했지만, 놀이기구처럼 튕기며 하천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순간의 공포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나, 차량은 폐차됐다. 그제야 깨달았다. 순간의 쾌락이 가져온 속도의 대가는 너무나도 무거웠다는 사실을.


 첫 사고 이후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고가 덮쳤다. 이번에는 영업과장의 부탁으로 1톤 트럭을 몰고 김해로 향하던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다시 속도의 유혹에 빠졌다. 김해터널을 지나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리던 중, 옆 차선에서 깜빡이도 켜지 않은 차량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반사적으로 핸들을 급히 꺾었고, 그 순간 내 삶이 다시 멈춰버렸다.


 트럭이 전복되는 순간,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채 앞 창문을 뚫고 하늘로 튕겨 나갔다. 몸은 허공을 가로질러 화단 경계에 부딪혔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땅 위에 누워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참히 파괴된 트럭과 뒤집힌 채 계속 돌아가는 바퀴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위로의 말이 들렸지만, 귀에는 그저 윙윙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어깨를 타고 흘렀다. 구조대가 도착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출고된 지 10일도 채 안 된 1톤 트럭은 폐차됐고, 영업과장은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회사에 큰 피해를 입혀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사고는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삶은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속도의 쾌감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다. 타인의 안전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 운전할 때마다 속도보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삶이 더디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느냐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과거의 과속은 교훈을 남겼고, 더 이상 무모한 질주는 하지 않는다. 오늘도 조용히, 신중하게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음미하며 살아간다. 두 번의 사고가 준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더 깊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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